中企 수출 OEM이 56% "디자인 자신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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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인천의 낚싯대 전문 수출업체인 T사는 수출 상품의 1백%를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가 수출제품 전량을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이유는 설계뿐 아니라 제품 디자인 개발 능력이 선진국 경쟁업체에 비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T사는 외국의 주문업체에서 디자인 등 모든 설계 관련 자료를 받아 그대로 제품을 생산한 뒤 수출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디자인 관련 부서에 직원이 세명 있는데 디자인 전문인력은 아니다"며 "디자인 개발의 필요성을 알고 있지만 회사 규모가 작고 전문인력이 부족해 자체적으로 디자인을 개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주요 중소 수출기업의 대부분이 디자인 개발 능력이 부족해 OEM 방식으로 수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달 2일부터 25일까지 섬유·신발·생활용품·전기전자 등 10개 업종의 2백25개 중소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중소 수출기업 디자인 개발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의 OEM 수출 비중이 56.8%에 달했다고 10일 밝혔다.

업종별로는 신발·가죽 부문의 OEM 비중이 72.5%에 달해 가장 높았으며 섬유(71.4%)·화장품(55.7%)·전기전자(55.0%)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전체 조사 업체의 60.4%인 1백36개 기업이 디자인 부서와 디자인 관련 인력이 전혀 없다고 응답해 중소 수출기업에서 취약한 디자인 개발 능력이 OEM 방식의 수출 비중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분석됐다.

귀금속·공예와 화장품·생활용품 등은 자체적으로 디자인 관련 부서를 두고 있는 업체가 많았으나 섬유와 운동·오락기구 등의 업종은 적었다.

디자인 부서가 없는 업체 가운데 73.3%는 바이어가 요구하는 디자인에 따라 제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나머지 업체는 전문업체에 의뢰하거나, 기성 디자인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업체들은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가장 큰 애로점으로 개발인력 부족을 꼽았으며 ▶디자인에 대한 경영진의 낮은 인식▶디자인 전문업체의 취약한 개발능력▶디자인 기자재와 소프트웨어 부족 등도 꼽혔다. 또한 조사대상 업체의 8%만이 자사 제품의 디자인이 세계 시장에서 상위 10% 안에 들어간다고 응답했다.

이인호 무협 기획조사팀장은 "휴대전화·TV 등 대기업 제품의 디자인은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중소기업 제품의 디자인은 선진국 업체와의 격차가 크다"며 "전반적으로 디자인에 대한 중소기업의 관심은 커지고 있으나 전문 인력을 투입할 만큼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teent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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