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첫 首都는 오녀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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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6일 코엑스 특별전시장에서 막을 올린(3월 5일까지) '특별기획전 고구려!-평양에서 온 고분벽화와 유물'은 고구려 문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교실'이다. 고구려연구회장인 서길수(서경대) 교수는 중국 고고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와 직접 현장을 조사한 결과를 종합, 중국 랴오닝(遼寧)성 환런(桓仁)현 오녀산성이 고구려의 첫번째 수도가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녀산성은 고구려 초기 왕성 후보지로 거론돼 왔지만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서교수의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우리는 대개 고구려의 수도를 평양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평양은 427년 천도 이후 668년까지 2백41년 동안만 수도였을 뿐이다. 거의 두배 가까운 기간인 4백64년 동안 고구려는 압록강 이북에 수도를 두고 광활한 대륙의 땅을 경영했다.

고구려의 첫 수도에 대한 논의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조선시대만 해도 고구려의 첫 수도는 평안도 대동강 상류에 있는 성천이라고 했고(『신증동국여지승람』 권 50 성천도호부 건치연혁), 안정복은 현재 중국 랴오닝성 신빈(新賓)에 있는 싱징(興京·청나라의 발상지·현재의 신빈)이 고구려의 첫 수도라고 했다(『동사강목』).

1880년 전후 광개토대왕비가 발견되면서 논의가 활발해졌다. 광개토대왕비에는 '옛날 시조 추모왕(鄒牟王)께서…비류곡(沸流谷) 홀본(忽本) 서쪽에서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우셨도다(於沸流谷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광개토왕비는 고구려뿐 아니라 우리나라 금석문에서 가장 오래 된 비석이고 고구려 사람들이 직접 글을 새겼기 때문에 다른 어떤 사서보다 신빙성이 높다. 우선 '주몽'은 '추모'를 한자로 옮기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 사서나 삼국사기에서 나온 '졸본' 또는 '흘승골성'은 '홀본'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추모'가 첫 수도를 세운 홀본성은 어디일까. 일본 학자들은 처음 지안(集安)의 산성자산성과 환런의 오녀산성을 고구려의 첫 수도로 추정했다. 그뒤 지안이 두번째 수도인 국내성(서기 3년에 천도)이라는 사실이 확정되면서 오녀산성에 관심이 집중됐다.

중국 학자들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오녀산 정상이 고구려 성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고구려 연구의 대가인 왕젠쥔(王健君), 고고학 전문가인 웨이춘청(魏存成) 같은 주요 학자들이 모두 오녀산이 고구려의 첫 수도는 물론 고구려 산성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고구려 유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86년 오녀산 꼭대기에 텔레비전 송신탑을 세우기 위한 긴급 발굴조사에서 고구려 초기 유물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 때부터 중국 학자들도 오녀산성이 고구려 성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1996년부터 3년간 오녀산성을 전면 발굴했다. 2천점 가까운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2000년 12월 '3∼10세기 고대 문화학술토론회'에서 발굴 총책임자가 '고고발굴에 따른 오녀산산성의 시대와 성질'이란 글을 발표했다. 토론회는 비공개로 진행됐고, 아직까지 발굴보고서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토론회에서 거론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오녀산성에 대한 중국 학계의 입장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최근 선양(瀋陽) 동양연구중심의 한 학자가 오녀산성에 대한 비공개 문건을 인용해 쓴 논문을 입수했다. 또 지난해와 올해 두차례 현지 답사한 결과 중국측이 오녀산성을 고구려의 첫 수도로 인정하고 있는 점은 확실하다.

오녀산 정상은 해발 8백20m다. 고원의 평지 넓이는 30만㎡에 이른다. 중국 당국은 현지에 '왕궁유지(王宮遺址)'라고 새겨진 표지석을 세워놓았고 안내판을 설치했다. 고구려의 왕궁터였음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안내판에는 '기원전 34년 오녀산성에 궁전을 세웠다. 궁전은 북에서 남쪽으로 지었는데 모두 7칸이다. 네 벽은 흙이나 돌로 쌓았고 집 위에는 풀을 덮었다'라고 적혀 있다.

중국은 96년 조사에서 병영터와 곡식창고를 새롭게 발굴했다. 병영터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병영은 고구려 때 수비병이 거주한 곳이다. 병영 4벽은 나무기둥으로 벽을 했고 안에 온돌이 있다. 집터에서는 대량의 질그릇, 철기, 쇠살촉, 갑옷비늘 그리고 완전한 철갑옷이 나왔다'고 씌어 있다. 왕궁터와 왕궁을 지키기 위한 병영 시설에서 발견된 고구려 병사들의 유물들. 그것들이 무엇을 말해주겠는가. 오녀산성은 고구려 첫 수도가 확실하다.

오녀산성 서쪽에는 'ㄷ'자꼴의 옹성이, 동쪽에는 길이 1천m 가량의 성이 축조돼 있다. 전형적인 고구려의 축성법을 볼 수 있어 고구려 성곽 연구의 표준이 되고 있다.

<고구려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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