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일본에 뺏긴 문화재 찾아오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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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람이 너무 몰리자 박물관 측은 관람 시간을 1분으로 제한했다. 입구에 ‘몽유도원도 여기서부터 2시간 걸립니다’는 푯말도 붙였다. 입구까지 한 시간, 평균 ‘3시간 줄 서 1분 관람’인데도 줄이 줄기는커녕 더 늘었다. 소장자인 일본 덴리대 측이 “다시는 (몽유도원도를) 전시하지 않겠다”고 한 말이 국내에 전해진 게 컸다. 겸재 화첩도 근 100년 만에 귀국해 선을 보인 자리였지만 몽유도원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두 그림의 차이는 또 있다. 소장자의 그릇이다. 겸재 화첩은 독일의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이 갖고 있다가 몇 해 전 영구 임대 방식으로 돌려줬다. 수도원 측은 “귀중한 문화재일수록 가장 사랑받는 곳, 잘 관리될 곳에 있어야 한다”며 “겸재 화첩이 있을 곳은 바로 한국”이라고 말했다. 문화를 대하는 큰 시각을 보여준 셈이다. 반면 덴리대 측은 몽유도원도를 돌려주기는커녕 앞으론 전시도 삼간다는 입장이다. 훼손이 우려된다는 게 이유지만 속내엔 한국 측의 반환요구 등에 시달리기 싫다는 계산도 깔려있다고 한다.

당장 예쁜 독일, 미운 일본 소리가 나오지만 그뿐이다. 원망과 하소연으론 잃은 문화재를 되찾을 수 없다. 강제로 돌려받을 길도 없다. 그렇다고 자진 반납만 기다리는 건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일일이 거액의 돈을 주고 되사는 것은 중책(中策)이요, 상책은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다. 여론을 움직이려면 끝없이 요구하고 몰아붙여야 한다. 특히 일본은 ‘여론 왕국’이다. 내각지지율이 떨어지면 총리가 바뀌는 나라다. 아무리 옳은 정책이라도 여론이 반대하면 못한다.

여론을 움직이는 방법 중 하나가 여론조사다. 수시로 여론 조사를 통해 남의 문화재 강탈은 나쁜 짓, 장물 취득은 범죄, 반환은 좋은 일임을 일깨워야 한다. 그리스는 그렇게 했다. 영국을 끊임없이 몰아쳤다. 두 세기 전 엘긴 백작이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간 조각품, 이른바 ‘엘긴의 대리석’을 돌려달라고. 견디다 못한 영국 정부는 여론조사를 했다. 첫 실시한 1998년엔 40%가 반환에 찬성, 반대는 15%였다. 그리스는 더 세게 압박했다. 파르테논 신전 밑에 최첨단 박물관을 착공하면서 아예 영국에 뺏긴 문화재가 들어갈 자리는 비워놓는 식이었다. 이후 영국의 여론 조사 찬성은 56%로 늘고 반대는 7%까지 줄었다. 영국 정부는 여전히 거부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선 ‘엘긴 대리석’의 반환을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반면 일본은 약탈 문화재에 대해 국민 의견을 제대로 구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나 민간이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번에 일본이 돌려주기로 한 조선왕실의궤도 따지고 보면 몇 년간 한·일 민간에서 달라붙은 결과다. 의궤 반환에 큰 역할을 한 일본 시민단체 ‘전후보상 네트워크’ 대표 아리미쓰 겐(有光健)은 “(문화재 반환에 부정적인) 일본 보수 언론의 시각을 바꾸는 게 한국 문화재 반환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은 개인이 하긴 어렵다. 이럴 땐 문화유산국민신탁의 후원 회원이 되는 것도 좋다. 3년 전 특별법에 따라 생긴 이 기구는 나라 안팎의 문화재를 지키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를 본떠 만들었다. 한 달에 1만원씩 내면 연말에 소득공제도 해준다. 그러나 3년간 회원은 고작 1500명 정도다. 영국의 360만 명과는 비교도 안 된다. 강임산 사무국장은 “회원이 많아져야 약탈 문화재 환수 등 큰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바빠서’ 잊는 문화재 사랑을 챙기는 방법은 많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