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못 견뎌 … 서울 강남 고가 아파트 경매 속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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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63)씨는 2006년 5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아파트 전용면적 134㎡형을 23억원에 샀다. 그해 말 이 아파트는 30억원을 웃돌면서 큰 시세차익을 남기는 듯했다. 조씨는 이듬해 사업자금을 대기 위해 이 집을 담보로 수협에서 27억원을 빌렸다. 하지만 사업은 풀리지 않았고 대출이자 연체는 계속됐다. 결국 이 아파트는 17일 서울중앙법원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감정가는 24억원. 하지만 응찰자는 한 명도 없었다. 결국 이 아파트는 10월 최저가 19억2000만원으로 다시 경매된다.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의 감정가 20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들이 잇따라 경매로 나오고 있다. 대출 만기에 돈을 갚지 못하거나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물건이 대부분이다.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가 고가주택에까지 타격을 가하면서 결국 경매시장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17일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이달 경매시장에 나오는 감정가 20억원 이상의 초고가 아파트는 모두 11건이다. 압구정동 현대, 도곡동 도곡렉슬, 신천동 롯데캐슬의 대형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 달 평균 3~4건이었다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다. 감정가 10억원 이상 아파트도 52건이나 경매로 넘어와 침체 현상을 반영했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올 3~4월께 경매로 넘어간 것이 지금 입찰에 부쳐지는 것”이라며 “주택거래 침체가 계속됐으므로 앞으로 강남권에서 경매로 넘어가는 고가 아파트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대형 고가아파트는 보통 경매에 나오더라도 경기가 좋아질 조짐이 보이면 채무자가 밀린 세금이나 대출금을 갚아 경매가 취하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5개월간 서울 집값이 떨어지고 거래가 끊기다시피 하면서 침체의 골이 깊어지자 경매로 처분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특징적인 것은 개발 재료가 있어 투자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 강남권 아파트도 줄줄이 경매에 나온다는 것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이 달 5건이나 경매에 부쳐졌다. 이 중 감정가 21억원짜리 아파트는 지난 11일 16억8000만원에 주인을 만났다. 서울시가 한강변 르네상스 프로젝트로 적극 추진하는 초고층 재건축 대상인 게 무색하다. 최근 초고층 건립 개발 계획이 나온 은마아파트도 2채가 경매법정에 ‘출두’했다. 개포동 개포주공 아파트도 4건이 경매 매물로 나온다.

경매시장에 매물은 늘어나지만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급락세다. 이달 15일까지 강남3구 아파트 낙찰가율은 71.9%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9년 1월(71.2%)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보다는 7.5%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최근 3년 내 가장 큰 하락폭이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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