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공시 백태]이런 것도 '공시'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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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코스닥 기업인 이건창호는 지난달 25일 "업계 1위로 설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 준 고객들께 감사한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공정공시를 했다.

대리점과 거래처에 대한 안내문 형식으로 된 이 공시는 중간에 관계사의 사업 부문을 적극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업주들을 격려하는 내용이 많았다.

회사 관계자는 "안내문을 발송하다 보니 장래 사업계획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어 공정공시로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색적인 내용과 형식의 공정공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공정공시는 실적·사업계획 등 중요한 기업 정보를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알린다는 목적으로 지난달부터 도입된 제도다.

하나로통신도 지난달 29일 성명서 같은 공정공시를 했다.

이 회사는 공시에서 "오늘 발표된 데이콤의 파워콤 인수는 국내 1백년 통신 역사상 또 하나의 불행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며, 이에 대해 침통함을 금할 길이 없다"고 운을 뗀 뒤 파워콤 인수가 무산된 데 따른 충격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회사 관계자는 "파워콤 인수에 대한 회사의 입장을 정리했을 뿐이며 보도자료로 만들었기 때문에 규정상 공정공시를 했다"고 설명했다.

전엔 볼 수 없던 내용들이 공정공시로 등장하는 것은 공시해야 될 대상을 너무 포괄적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라고 증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규정 위반으로 걸리는 것을 피하려다 보니 이런저런 내용을 다 공정공시로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실적·사업계획 등과는 별 관계가 없는 홍보성 내용과 기업 입맛에 맞는 자료들이 공정공시로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L사는 최근 인터넷 즉석 복권 이벤트를 공정공시했다.

또 신상품 출시나 대표이사가 중국의 한 도시의 정보기술(IT) 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는 내용을 공정공시로 내놓은 회사도 있었다.

코스닥증권시장 공시 담당자는 "지난달 코스닥 시장의 공정공시 5백27건 중 함량 미달인 경우가 10여개 정도로 보인다"며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라면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는 사실 등 홍보성 내용도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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