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保革대결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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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선거 풍토의 맹점 중에 하나가 정책대결 부재였다. 정치부 데스크를 맡고 있던 시절 이러한 풍토를 개선해 보고자 의식적으로 후보간 또는 정당간 정책대결을 신문에 부각시킨 적이 있다. 결과는 실패였다. 정당간에 정책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좋은 것은 서로 다 한다고 공약을 내놓고, 상대당 정책이 인기가 있다 싶으면 즉각 베끼기를 하니 차이가 날 수가 없었다. 또 공약을 그대로 지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없었다. 공약을 내놓는 쪽에서도 일단 번드르르하게 말잔치를 벌여 놓고 당선이 된 후는 "아니면 말고"식으로 넘어가거나 아예 공약과는 정반대의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때는 "보수정당끼리 경쟁을 하니 무슨 정책의 차이가 나겠느냐, 차라리 보혁구도로 가는 것이 정책대결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이번 선거는 양 후보의 정체성이나 이념 면에서 구별이 생겼다. 그 점에서 보수와 진보의 정책대결도 가능해졌다. 사실 양 후보의 안보관·기업관·언론관 등은 대조적인 것들이 많지만 이런 것들이 본격적으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대신 과거와 비슷하게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만이 활개치고 있다.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도청 시비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주요한 문제제기라고는 생각되나 그 시기나 방식은 매우 정략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몇달 전에 확보된 도청자료를 찔끔찔끔 필요에 따라 흘리는 것 자체가 당당한 자세가 아니다. 여당의 병풍을 비난할 수 없게 됐다. 도청의혹을 감싸고 도는 여당은 더욱 꼴불견이다. 노무현(盧武鉉)후보가 도청을 지시하거나 부탁한 일도 아닌데 무엇이 구려서 정부를 감싸는지 알 수가 없다.

두 후보가 맞붙어야 할 전선(前線)은 이념과 정책이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국과의 관계정립 문제, 북한의 핵 문제를 둘러싼 남북관계, 교육문제, 부의 재분배 문제, 기업환경의 문제 등등 어느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나라의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두 후보간의 차이만큼이나 유권자들의 이념 분포도 과거와 비교할 때 매우 넓어졌다. 얼마 전만 해도 금기시됐던 문제들이 이제는 자유롭게 공론화되고 있다. 20, 30대와 50, 60대가 다르고, 영·호남이 다르고,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생각이 다르다. 남은 선거 기간 중 이념과 정책에 대한 토론이 활발해지든, 혹은 잠복되든 간에 우리 내부의 대립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선거가 한 쪽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는데 선거 후 이러한 이질성을 어떻게 통합해 나가느냐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자율적 조정능력을 가지고 있느냐다. 이 점에서 나는 자가당착적인 불안을 느끼고 있다. 선거에서 정책대결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불가피한데 그 결과로 빚어지게 될 사회적 분열현상을 어떻게 수습해 나갈 수 있느냐는 점이다.

사실 양당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본체제에 대한 합의와 동질성이 있어야 한다. 두 당간에 이데올로기적인 거리가 멀면 멀수록, 견해차이의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건전한 양당체제는 불가능하다. 정치가 어지러워진다는 얘기다. 최소의 이념적 거리에다 고도로 합의된 정치사회가 아니고서는 양당제는 성공하기 어렵다 (사토리,『정당과 정당체제』 1백92쪽).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과연 서로 용납할 수 있는 이념적 동질성을 확보하고 있는가? 기본체제를 동의하는가? 서로간의 견해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은가? 이런 의문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뒤의 우리 현실이 걱정스럽다.

처방은 있다. 먼저 양 후보간의 대립이 기본틀 안에서 전개돼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본틀은 헌법이다. 보수든, 진보든 대한민국 헌법 안에서의 보수와 진보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유민주주의 틀 안에서 보수와 진보가 아울러야 한다. 헌법의 틀 안에서 좌와 우가 공존해야만 건전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선이 없이 벌어지는 보혁대결은 혼란과 와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다음은 사회구성상 허리와 중간에 해당하는 중산층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 어느 사회나 좌우의 양극으로 떨어져 나가려는 세력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중산층이다. 중산층이 두터워야 정치가 안정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보통사람들로 구성된 이 중산층이 선거 결과를 초월해 세대·소득·지역간의 차이를 극복하는 사회적 통합자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에게 이러한 건전한 중산층이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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