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이제 성장은 포기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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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 정부는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두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이번 개각으로 보여준 대통령 개인의 권력강화에 대한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친서민경제로 국정 방향을 전환시킨 것이다. 권력 누수 현상을 막기 위해 새 내각에 자기 사람들을 전면 포진시켰다. 특히 의외의 젊은 총리를 선택함으로써 대통령이 차기 권력의 향배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총리의 임명에는 두 가지 선택이 가능했다. 국정을 고려해 대통령의 집권 후반을 도울 수 있는 인물을 고르는 것이다. 국민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인물이나 경험이나 능력 면에서 대통령을 보좌해 줄 수 있는 인물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총리는 그러한 고려보다는 후계경쟁을 염두에 둔 정치공학적 선택이었다. 자연히 여당 내에서는 후계경쟁이 더 빨리 올 수밖에 없으며 경쟁자들은 대통령의 언행에 의심을 가질 것이다. 과연 대통령이 공정한 심판자가 될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정 후반은 오히려 더 불안해질 것이며 심하면 여당의 분열까지 내다보게 된다.

8·15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화두를 내걸고 임기 후반을 서민경제에 주력할 뜻을 피력했다. 전반부에 경제위기 극복에 매달리다 보니 그 여파로 빈부의 격차가 더 커지고 이에 따른 불만이 크다고 인식을 한 듯하다. 서민경제를 강조함으로써 후반부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인기를 회복하자는 뜻도 있을 것이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서민경제를 챙기겠다는 뜻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접근 방식이다. 서민경제를 챙기고 빈부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리며 재원이 필요하다. 또 경제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정보기술(IT)·생명·환경 분야에 대한 투자는 어떻게 할 것이고, 인적 자원을 위한 교육 투자는 무엇으로 할 것이며, 교통·통신 등 사회 기반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이런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분배 위주로 가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아울러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묘안이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분배경제에 치중하면 경제에 대한 권력의 개입이 높아진다. 이 정권의 집권 명분은 분배보다 경제성장이었다.

시간은 얼마 안 남고 권력은 점차 힘이 빠지니 안타까울 것이다. 그러니 단기적인 성과를 노리게 되고 힘의 유지를 위해 무리를 하게 된다. 이것이 임기 후반의 덫이다. 이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현실을 냉철하게 살필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내내 푸르른 정권이 없듯이 집권 후반은 원래 힘이 빠지게 되어 있다. 민주화된 이후 정치공학으로 후계를 성공시킨 예가 단 한 번도 없다. 따라서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순조롭게 정권을 마무리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에 주어진 역사적 임무는 최소한 다음 정권만이라도 보수정권이 재집권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성장하는 시기가 있듯이 나라도 발전하는 시기가 있다. 시기적으로 다음 정권 때까지는 우리가 선진국권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를 추격해 오는 나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기회는 다시 없다. 청년 시절의 고생이 약이 되듯 나라도 힘든 것을 견디어야 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고생스럽지만 우리는 아직 성장에 더 치중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목표 역시 선진화였다. 그렇다면 다음 정권에서 이를 완성시킬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임기 후반을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니 안타깝다. 작위적인 후계구도를 만듦으로써 보수진영을 분열시키고, 포퓰리즘에 기대서라도 인기를 유지하려 한다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무슨 수단을 다 동원한다 해도 권력은 앞으로 2년이면 끝난다. 짧은 권력을 위해 발버둥치기보다 명예롭게 역사에 남는 길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