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빠진'맥주本家' 독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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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맥주 본가' 독일의 자존심이 흔들리고 있다. 전통을 자랑하는 유수의 맥주회사들이 속속 외국에 팔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회사는 세계 3위의 맥주그룹인 벨기에의 인터브루사. 한국의 동양맥주(OB맥주)를 인수한 회사이기도 하다.

인터브루는 지난해 독일의 대표적 맥주회사인 벡스와 흑맥주로 유명한 디벨스를 인수한데 이어 이번엔 매출액 기준으로 독일 랭킹 5위인 길데맥주를 인수한다.

하노버에 본사가 있는 길데맥주는 1526년 창업한 유서깊은 맥주회사다. 길데 외에 하세뢰더·볼터스 등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지난해 4백40만헥토ℓ를 생산, 3억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종업원이 9백명에 불과하지만 2천만유로의 순익을 올릴 정도로 건실한 회사다. 특히 옛 동독 지역에서 인수한 하세뢰더는 현재 동독지역 브랜드로는 랭킹 1위를 달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처럼 잘나가는 회사지만 자본력을 앞세운 인터브루의 적극 공세에 길데측은 회사를 넘기기로 결정했다. 길데측이 제시한 4억9천만유로의 매각가격에 인터브루측이 선뜻 응했기 때문이다. 길데는 지난 15일 이사회에서 정관을 개정, 이미 매각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복병이 나타났다. 이 회사의 주식 10%를 갖고 있는 하노버시측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하노버의 대표 맥주회사를 외국에 넘길 수 없다며 소송까지 제기하겠다고 위협했다.

인터브루는 적극적인 무마작전으로 나왔다. 앞으로 30년간 하노버에 있는 길데의 본사를 타지로 옮기지 않고 브랜드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정부측이 우려하고 있는 고용문제에 대해서도 앞으로 5년간 종업원을 단 한명도 해고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위반할 경우 해고자 한명당 1만유로의 위약금을 물겠다고 약속했다.

인터브루가 이처럼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자 하노버시로서도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어졌다. 결국 하노버시는 지난 26일 길데 보유주식 10%를 인터브루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독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가 끝나는 다음달 중으로 길데는 인터브루에 공식 매각된다.

이와 관련, 인터브루의 코넬 머에스 대변인은 "인터브루가 독일 최고 맥주 중 하나인 길데를 인수함으로써 독일 내 시장점유율을 2위로 끌어 올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맥주 본가의 자존심도 결국 국제적인 거대 자본의 공세 앞에 무릎을 꿇고 만 셈이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jsyoo@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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