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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채권조정안은 제값받고 팔기 위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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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강원 외환은행장은 채권단이 추진 중인 하이닉스반도체 구조조정안을 일부에서 독자생존 지원안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李행장은 2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하이닉스는 이미 두 차례나 채무조정을 받았을 정도로 독자생존이 상당히 어려워진 상태"라고 잘라 말했다.

李행장은 채권 1조9천억원의 출자전환과 3조원 여신 만기연장 등에 대해 "팔되, 제값을 받기 위해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의 설명대로면 하이닉스는 그냥 내버려둘 경우 내년 3월 말께 예상되는 유동성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구조조정안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반반이다. 신규 지원없이 하이닉스가 스스로 몸값을 올릴 만큼 신규투자를 해낼 것인가가 변수다.

지난 4월 취임한 이후 7개월 만에 구조조정안을 내놓은 李행장은 일단 한 고비는 넘긴 셈이다.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하이닉스 구조조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인 李행장은 우선 다음달 10일까지 1백20개 금융회사들로부터 채무조정안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소액주주들과의 한판 승부도 남아 있다. 출자전환에 앞서 자본금을 줄이는 감자(減資)가 불가피한데, 소액주주들은 벌써부터 채권단보다 자신들 주식의 감자비율을 작게 하는 차등감자를 요구하고 있다. 하이닉스가 강도높은 자구계획을 실천하도록 독려·감독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하이닉스가 제대로 자구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채권단은 또다시 부실기업에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조장해준 것이 된다.

도이체방크가 앞으로도 반도체 경기가 확 좋아지진 않는다는 보수적 전망으로 구조조정안을 짰다지만 만일 반도체 시장이 그 전망보다 더 나빠지면 채권단의 계획은 모두 헝클어진다.

투신운용 사장에서 일약 대형 은행의 행장으로 변신한 李행장의 앞길이 여전히 험난한 상황이다.

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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