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대북 대응, 더 이상 혼선 없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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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관련 당국자만 알고 국민은 뭐가 뭔지 모르게 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말에 빚어졌던 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싼 논란도 그중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은 영국에서 외신 인터뷰를 통해 ‘연내 정상회담 개최 가능’을 강력히 시사했다. 특히 “양측 간 화해협력을 위해 열린 마음으로 사전에 만나는 데 대한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발언은 기존 입장에서 진일보한 것이었다. 여권 고위관계자들도 이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성사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대통령 발언이 정상회담 성사와 관련해 그 이전에 밝힌 ‘핵 문제, 국군포로, 납치 문제 논의’라는 전제의 대부분을 거둬들인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자 상황은 반전됐다. “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언급은 북한이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이전처럼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라는 등 제동을 거는 발언이 이어졌다.

당시는 북한이 NLL 이북에 국한됐지만 해안포를 연일 쏘아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민은 ‘대포소리와 정상회담은 거리가 먼데 무슨 얘기인지’하며 의아해했다. 그러나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소는 없이, 하루가 지나면 내용이 바뀌는 여권 고위관계자들의 언급만 이어졌을 뿐이다. 정상회담 진행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국민의 요구도 없었는데, 자신들이 불쑥 끄집어낸 후 북 치고 장구 치다가, 두 달 뒤 천안함 사태를 맞은 것이다.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단한 것도 마찬가지다. 시행 여부에 대한 치밀한 검토 없이 발표부터 했다가 모양이 우습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해명은 없다. 국민은 ‘중국과 함께 미국도 반대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외신보도만 접할 뿐이었다. 이렇게 국민과 유리된 대북정책이 성공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무엇보다 외교안보 사안을 완벽히 장악하고 주도할 수 있는 인물이나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중앙 SUNDAY와의 인터뷰에서 NLL과 관련된 교전수칙을 개정해 북의 포탄이 NLL을 넘은 게 확실하면 똑같이 대응키로 했다고 밝혔다.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지난 1월에도 해안포 발사 상황이 있었는데 이제 와서 ‘검토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외교안보시스템이 느슨하게 돌아간다는 방증이다. 특히 천안함 진통을 겪고도 이렇다면 외교안보 조직 전반에 대한 장악력에 누수가 생긴 것이다.

남북 문제를 정권적 차원에 이용하겠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도 긴요하다. 천안함 침몰 원인 발표를 6·2 지방선거 앞으로 미리 확정하는 것 같은 우(愚)를 다시는 범해선 안 된다. 관련 정책을 순수하고 진정성 있게 추진하다가도 이런 사단을 한번 겪으면 그동안 쌓았던 성과는 물거품이 된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이 평화공동체→경제공동체→민족공동체로 연결되는 3단계 통일방안을 제시했다.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헌법을 수호하는 대통령이 나름대로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포부를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핵 해결이라는 평화의 토대 위에서 경제협력을 한 후 민족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접근 방법도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통일방안 천명과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대북정책은 다른 차원이라는 점을 정부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통일방안이 아무리 잘 구성돼 있다 하더라도 실제상황에서 헛발질만 한다면 그 이행은 요원해질 것이 자명하다. 오판으로 북한에 약점을 보이거나 감추는 데만 급급해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아야 한다. 특히 앞으로 한반도에 닥쳐올 태풍은 해안포 발사나 천안함 사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력이 강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안희창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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