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짭짤' 쟁탈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맞벌이를 하는 김모(31.여.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은행 예금에 매달 넣어왔던 150만원을 올 초부터 적립식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그가 펀드를 산 곳은 증권사가 아닌 거래은행의 동네 지점. 아파트를 넓히기 위해 목돈을 마련하려는 김씨는 "쥐꼬리만한 예금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행원의 권유로 즉석에서 펀드에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 같은 펀드 고객을 잡으려는 은행과 증권사들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공세 고삐 죄는 은행권=증권사들의 아성이었던 펀드시장에 후발주자인 은행들이 무차별적인 공격에 나섰다. 은행들의 펀드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초 17%에 그쳤으나 연말엔 27%로 뛰었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펀드시장의 절반을 은행이 차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은행들이 펀드시장에 군침을 흘리는 건 저금리 때문이다. 은행들은 고객이 최근 높은 수익을 찾아 적립식 펀드 등으로 눈을 돌리면서 수익 기반이 약해지자 펀드 판매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특히 올 들어 증시가 후끈 달아오르자 은행들도 펀드 판매에 치중하고 있다.

지난해 적립식을 포함해 총 8조원어치의 펀드를 팔았던 국민은행은 지난 17일 'KB스타 다가치 성장주 적립투자신탁 1호'를 포함한 전략 신상품 5개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국민은행은 '올해 장사는 이들 펀드로 한다'는 각오를 직원들에게 불어넣고 있다. 투신상품팀 심재우 팀장은 "예금을 받아도 굴릴 곳이 마땅치 않은데 비해 펀드를 팔면 높은 수수료(적립식의 경우 연 1.5% 안팎)가 꼬박꼬박 떨어진다"고 말했다.

하나은행도 지난해의 두배인 7조원어치의 펀드를 판다는 계획이다. 프라이빗뱅크(PB)영업추진팀의 안선종 차장은 "최근 자산을 펀드에 배분하려는 고객이 크게 늘고 있다"며 "시장 흐름에 따라 특화상품을 시리즈로 내놓겠다"고 말했다. 특히 하나은행은 1년간 준비한 고객자산관리시스템을 곧 가동할 계획이다. 고객들의 자산상태.투자성향을 파악해 정밀 컨설팅을 '부대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리은행도 올해 목표를 10조원(지난해 2조4000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수성에 나선 증권업계=은행들이 곳곳에 깔린 점포망을 무기로 고객을 유치하자 증권사들은 수성(守城)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적립식 펀드 판매액은 지난해 1조7000억원에서 올해는 4조원대로 급증할 전망이어서, 은행에 밥상을 통째로 내줄 순 없다는 게 증권업계의 각오다. 증권사들은 일단 "펀드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투자해야 한다"며 "전문성은 우리가 한 수 위"라고 강조한다. 펀드가 기본적으로 주식 등에 투자하는 상품인 만큼 자세한 상담이나 환매 시기 등은 증권사 직원들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LG투자증권의 윤영균 금융상품개발팀장은 "펀드 정보검색 시스템 등을 강화해 서비스를 차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의 도덕재 여의도 PB센터장은 "노후설계와 자산관리를 위한 투자 등 고유영역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객 입장에선 은행이나 증권사나 수수료.가입방법 등에서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경쟁적으로 새 상품을 내놓고 서비스를 개선하면 결국 고객에겐 득이다. 펀드평가사인 제로인의 이재순 비계량평가팀장은 "펀드는 결국 판매사가 아닌 운용사 실적에 따라 성과가 판가름나는 만큼 수익률을 꼼꼼히 비교해 봐야 한다"며 "특히 적립식은 단기 1등보다는 장기적으로 중상위를 유지한 펀드가 좋다"고 조언했다.

김준술.윤혜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