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금리 올리기 '너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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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요즈음 우리 정부나 은행들이 고금리로 가계대출을 압박하는 모습에서, 외환위기 때 살인적 고금리로 우리를 목 조이던 IMF나 외국금융기관들의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대기업 조이기에 '부채비율 200%'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둘러 재미봤던 정부가 이제는 부채가 소득의 2.5배를 넘는 가계로부터 이자를 더 받아내라고 보채고 있다.

아무리 정부소유 은행이 많다고는 하지만 '가계부채비율 2백50%'을 강요하는 건 너무 심하다.

보통 사람들은 일해서 번 돈만으로 빚을 갚아가는 게 아니다. 예금·보험 헐고 그걸로 안되면 집과 땅을 팔아 빚을 갚기도 한다.그런데 소득과 부채간의 비율로,그것도 마치 무 자르듯 2백50% 하나로 좋은 가계와 불량 가계로 나눈다는 건 행정편의적 흑백논리다.

은행이 스스로 정해야 할 대출심사 기준을 정부가 정하는 건 평상적인 금융감독권을 넘어선 행정만능주의다.게다가 모든 은행들이 동시에 금리를 올리는 건 전형적인 '담합'아닌가.불공정거래를 척결해야 할 정부가 이럴 수 있는가 싶다.

부동산 버블이 가라앉으면서 가계대출이 저절로 줄어들텐데,왜 고금리의 칼을 빼어들었을까.정부·은행·사채업자가 짜고치는 고스톱은 아닐까.정부는 위태롭게 늘어난 가계대출을 줄여서 좋고,은행은 이자 더 받아 싱글벙글일 게고,사채업자는 은행에서 내몰린 가계로부터 고리를 뜯어낼테니 '일석삼조'인 셈이다.

그러나 가계를 고금리로 조이면 그 부담을 못이겨 돈을 못갚는 가계들이 속출할 수 있다.더 심해지면 은행마저 부실해지고 경기가 거꾸러질 수도 있다.

또 신용불량 가계가 늘어나 시장에 신용불안이 조성되면,멀쩡한 가계에 대한 대출금리마저 덩달아 오른다.그에 따라 신용불량자가 더 늘어난다.고금리와 신용불안 간의 악순환에 빠진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가계의 '대출금리 올리기와 예금금리 낮추기'는 멈추지 않을 태세다. 은행들은 "정부 압박이 심해서 대출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고,안심하고 꿔 줄 데가 마땅치 않아 예금금리는 내려야겠다"고 말하고 있다.

담보를 충분히 잡혀 놓고 이자도 잘내고 있는데 부채비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고금리를 강요당할 때,가계로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대출자들이여,단결하라(Unite,Debtors)! 그리고 은행을 떠나라.대출이 쪼그라들어도 은행이 고금리 내라는지 한번 두고 보게.

소비도 팍 줄여라.경기가 거꾸러져도 정부가 고금리 매기라는지 한번 지켜보게.

econop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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