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7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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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내가 광길이에게 무전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자 그는 한술 더 떠서 코스를 학교 동급생 선배 또는 졸업생들이 사는 지방을 따라서 짜면 편리할 거라고 말했다. 여행을 떠나겠다고 어머니에게 말했을 때 - 나는 물론 그녀가 허락하지 않아도 그냥 떠날 생각이었지만 - 순순히 그렇게 하라면서 그래도 비상금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함께 준비하자, 라는 그녀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등산 장비들 중에 대충 골라내면 될 것이었다. 당시의 등산 장비라는 게 거의가 군용품들이었다. 나는 배낭과 수통 따위의 간단한 것들만 추리고, 텐트라든가, 버너. 코펠 같은 취사도구 등은 손도 대지 않았다. 그때에는 이미 상도동의 그 방 많고 쓸쓸한 언덕 위의 집으로 이사한 뒤여서 광길이가 떠나기 전날 밤에 집으로 와서 함께 잤다. 전날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더니 과연 장마철답게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먼 길을 떠나려면 늘 다니던 길인데도 전날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새벽에 빗소리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가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는데 부엌 쪽 마루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어머니가 부엌 마루에 앉아 뭔가 쇠절구에 찧고 있었다.

- 뭘 하시는 거예요?

- 비상 식량 만든다. 미숫가루 하구 인절미 좀 하련다.

어머니는 늘 그랬다. 중학교 때에도 수영 연습을 하러 동대문 운동장 풀장에 나가려면 밥이 안 넘어갈 거라고 간식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다. 그때가 어떤 시절이었나. 같은 수영반 아이들이 얻어먹어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속으로는 찡했으면서도 겉으로는 언제나 쑥스러워하고 다 큰 사내 자식이 남들 보기에도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 그런 거 다 필요 없어요. 돈 좀 있으면 되지 뭐.

- 돈 갖구 가려면 무전여행은 왜 하니….

어머니는 예전에 만리포에 보내주었을 때에도 시시콜콜 따지지 않았고, 더구나 이번의 무전 여행은 속으로 찬동을 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누나들에게는 저녁에 조금만 어두워져도 역으로 마중을 나가든가 더 늦어지면 야단을 치면서도.

광길이와 나는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배낭 속에는 미숫가루와 아직은 말랑한 인절미가 들어 있었다. 물론 기차는 철도원들의 눈을 피해서 공짜로 타기였다. 노량진 간이역은 역사만 빼놓고는 어디나 휑한 길가여서 표 없이 올라타기가 좋았다. 피란길의 며칠씩 걸리는 여행 보다는 그래도 나았지만 지방으로 가는 교통 수단은 열차가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 우리는 경부선 완행열차에 올랐다. 기차는 작은 간이역들에도 빠짐없이 섰고 출발도 느릿느릿했다. 통로와 객차 사이의 승강구에도 빈틈없이 승객들이 몰려섰고 어떤 사람은 객차 안의 물건을 얹는 선반 위에 올라가 걸터앉기도 했다. 우리는 승강구의 층계 아래 위에 차례로 걸터앉았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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