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View/김영철의 차 그리고 사람] 다이애나 비처럼, 품위 있게 차에 올라 보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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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 [Getty Images/멀티비츠]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 발표가 있자마자 버킹엄궁은 다이애나 비에게 왕세자비 수업을 받도록 했다. 그 수업 중 하나는 차에 타고 내릴 때의 몸가짐과 자태였다. 차를 타고 내리는데 무슨 어려운 일이 있다고 수업까지 받게 하나 싶었다. 하지만 처녀 때 미니(Mini)를 몰고 다녔던 다이애나 비가 왕세자비가 되어서도 자기 멋대로 타고 내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왕실의 걱정을 고려한다면 이해가 될 만도 하다. 평범한 삶을 살았던 1m78cm의 큰 키에 긴 다리를 가진 다이애나 비가 과연 궁중의 예법에 따라 품위 있게 차에 오르고 내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여왕도 당연히 했을 것이다. 어쨌든 다이애나 비가 차를 타고 내리는 수업을 받는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어느 잡지에선 여성 독자를 위해 ‘다이애나 비의 차 타는 방법’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그 방법을 소개하면, 뒷문으로 탈 때는 엉덩이를 편안한 각도로 차 시트 위에 얹혀 놓은 다음 두 다리를 모아 차 안으로 옮겨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숏 다리’ 소유자는 문제가 없겠지만 ‘롱 다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래도 모은 다리를 30도 정도 좌측으로 기울이면서 차 문턱을 넘어야 한다. 이때 엉덩이와 다리를 따라 상체도 동시에 차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머리는 최대한 곧게 세우고 허리는 살짝 굽혀 머리가 차 문틀에 닿지 않고 안으로 쏙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이 동작을 한숨에 하면 우아한 자세로 차에 오를 수 있게 된다. 다이애나 비가 몇 번 연습을 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왕세자 비가 된 후 TV에 비친 차 타는 모습은 정말 공주 같았다.

우리 주변에도 공주는 아니지만 공주처럼 차의 뒷좌석에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는 귀하신 분도 있겠지만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 친구 차를 얻어 타는 사람 등 이런저런 이유로 뒷좌석에 타야 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성들이 차를 타고 내리는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여자가 다이애나 비처럼 수업을 받지 못해서 그런지 세련되고 우아하게 차에 오르내리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차에 타는 것도 익숙하지 않지만 차에 타고 나서도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에 대한 에티켓도 부족하다. 우리 집 가사를 돌봐주시는 아주머니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차에 타시라고 한 적이 있다. 아주머니는 고맙다면서 서슴지 않고 뒷문을 열고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운전은 내가 했는데 정말 ‘김 기사’가 된 기분이었다. 뭐 그래서 그것이 못마땅했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사회엔 뒷좌석에 타는 것이 상식화돼 있다는 말이다. 차에 탈 사람이 여러 명일 때, 운전석을 뺀 나머지 네 자리에도 정해진 룰이 있다. 대개 먼저 타는 사람이 임자고 나중에 타는 사람이 남은 자리에 앉는 식이다. 또 먼저 내릴 사람이 문 옆이나 조수석에 앉는 것은 택시 합승이 있던 시절의 배려가 마이카 시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 습관이기도 하다. 물론 기사가 있는 승용차엔 자리 배당이 다르게 적용된다.

여기서 어느 자리에 누가 앉느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차를 타고 내리는 여성들의 자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 마치 요가를 하는 것 같아 공주가 타고 내리는 우아한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 여성은 대부분 차를 탈 때 머리부터 차 안으로 들이민다. 그것도 허리를 90도 굽힌 상태에서 머리를 차 안으로 잽싸게 집어넣고 엉덩이와 다리는 그냥 머리를 쫓아 들어오게 한다. 문틀이 넓지 않아 엉덩이가 들어올 땐 입구를 꽉 채운 것처럼 보인다. 바지를 입었거나, 스커트를 입었거나 타는 모습은 달라지지 않는다. 머리가 차 안에 있으니 밖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니 엉덩이의 움직임이 흉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아닌가도 싶다. 마치 꿩이 사냥꾼을 만나면 몸뚱이는 상관 않고 머리만 눈 속에 파묻는 것과 같다. 왜 우리나라에선 머리를 차 안에 먼저 집어넣는 것일까. 아마도 사극에서 가마를 타는 장면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싶다. 차 탈 때만이라도 가마 타는 것처럼 해볼까 해서 머리를 먼저 집어넣는지도 모르겠다.

운전석이나 조수석으로 탈 때도 마찬가지다. 뒷좌석에 타는 것처럼 엉덩이를 좌석에 안착시키고 다음에 모은 두 다리를 차 안으로 옮겨놓아야 한다. 그런데 자주 목격되는 것은 치마를 입었거나 바지를 입었거나 한 다리만 먼저 차 안으로 넣으면서 자리에 앉아 남은 다리를 끌어들이는 식인데 이는 정말 세련된 자세가 아니다.

군용 지프를 두들겨 자가용으로 썼고, 군용 스리 쿼터(3/4)가 승합차를 대신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또 택시 잡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려웠던 시절에 용케 택시를 잡게 되면 차를 옆으로 타건 뒤로 타건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나는 여기서 세련되게, 우아하게 차를 타자고 말한다. 시속 0km에서100km까지 이르는 데 3.6초가 걸리는 차, 하이브리드 차, 최첨단 기술이 만든 멋진 차에 탄다면 이왕이면 공주는 아니지만 멋진 자세로 세련되게 차에 오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는 차는 리콜해 손을 봐주는 세상이지만, 촌스러운 자세로 차에 오른다고 그 사람을 리콜해 차 타는 법을 가르쳐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가야미디어 회장(에스콰이어·바자·모터트렌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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