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최대 승부처는 호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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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론조사로 두 당의 대통령 후보를 단일화하는 것은 사상 처음의 시도다. 21일 협상이 중단되는 등 그만큼 진통이 크지만 실제로 대결이 성사된다면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은 최대 승부처를 호남으로 보고 있다. 호남 민심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맞대결할 후보를 정해줄 것이라는 얘기다.

이같은 가능성은 공교롭게 정몽준 후보 측이 제기한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역(逆)선택 방지책 때문에 더욱 커지고 있다. 양측은 여론조사의 첫 질문에서 李후보 지지자들을 가려내기로 한 상태다. 나머지 응답자들에게만 단일후보를 선택할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이럴 경우 응답자 가운데 호남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 16일 실시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李후보는 영남권에서 51.8%의 지지를 얻었다. 반면 李후보의 호남지지도는 7.8%였다. 이대로라면 영남 출신 응답자들은 반수 이상 단일화 조사에서 제외된다.

현재 각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샘플에서 광주·전남북 등 호남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1.1%.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 출신까지 포함시키는 원적(原籍)별 분류에선 호남비율이 23%까지 올라간다. 여기에 李후보 지지자를 제외하면 비율은 더욱 커진다.

양 진영의 호남 쟁탈전은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다. 최근 鄭후보 측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역선택 가능성을 집요하게 제기한 것도 호남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호남 사람들을 향해 "이회창 후보가 두려워하는 상대는 정몽준"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鄭후보는 TV토론 준비를 위해 모든 지역방문 일정을 취소했지만 지난 18일에는 광주와 나주·전주를 방문했다.

盧후보가 "지엽적인 문제는 다 양보하겠다"(20일 수도권 후원회)고 발언한 것도 역시 심리전이라는 분석이다. 단일화를 바라는 호남 민심에 부합하려는 전략이다. 盧후보는 이 지역의 민주당 프리미엄도 기대한다. 盧후보와 불편한 관계였던 광주의 강운태(姜雲太)·김경천(金敬天)의원 등이 "盧후보 당선을 돕겠다"고 밝힌 것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호남 민심은 그동안 '노풍'(盧風)과 '정풍'(鄭風)을 번갈아 일으켜 세웠다가 가라앉혔다. 실제 鄭후보의 호남지지도가 盧후보를 앞설 때는 盧후보의 전체 지지율도 10%대에 묶였고, 鄭후보는 2위로 이회창 후보를 바짝 추격했다.

<표 참조>

그러나 盧후보가 鄭후보를 호남에서 15%포인트 차로 따돌렸던 지난 8∼9일 중앙일보 조사에선 두 사람의 전체 지지율도 21.8%(鄭후보) 대 21.1%(盧후보)로 달라졌다. 盧후보와 鄭후보의 호남지지율이 두배 이상 차이가 났던 지난 16일 조사에선 盧후보와 鄭후보의 순위가 뒤바뀌었다. 호남지지율에 따라 두 후보가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이와 관련, 한 여론조사 관계자는 "盧후보가 고향인 영남에서 표를 얻어오지 못해 실망한 호남사람들이 鄭후보에게로 옮겨갔으나 鄭후보 또한 불분명한 정치노선을 보이자 다시 민주당 후보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호남인들이 원하는 것은 이회창 후보를 꺾어줄 후보인 만큼 승부는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강민석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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