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여성]女性과학자 5000년史 : 한국의 1세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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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4면

한국에서 여성 과학기술자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백년 전의 일이다. 최근 들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김점동(세례명 박에스더·1877∼1910)이 1900년 미국의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했던 것이다. 서양의 마리 퀴리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활동을 했으니 그 등장 시기가 늦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당시는 여성이 과학기술을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제한돼 있어 그녀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활동하다보니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폐결핵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일제 치하에 들어서는 해외 유학이 보다 활발해지며 여성 과학기술자도 점차 늘어났다. 여전히 국내에는 여성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이 없었고, 대신 외국 유학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최초의 여성 박사로 알려진 송복신은 미국 미시간대에서 공중보건학으로 29년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자세한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김삼순은 홋카이도제국대 식물학과를 43년 졸업하고 나중에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규슈대에서 박사학위를 딸 정도로 연구에 열정을 기울인 실질적인 최초의 여성 연구자였다. 이들과는 달리 우봉금은 국내에서 공업전습소를 나온 후 중앙시험소에 이어 중앙공업연구소에서 활동한, 아마도 최초의 여성 기술자였을 것이다.

해방 후 여성의 과학기술 분야 진출은 보다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대학 진학 기회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과학기술 분야에서 다수의 여성 학위자들이 외국에서 배출되면서 과학연구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50년대 후반에 물리학의 조균행(일리노이대), 화학의 모정자와 장혜원(컬럼비아대), 생물학의 김윤덕 등은 대학 졸업 후 미주로 유학가서 일찍이 학위를 받은 대표적 여성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국내로 돌아오지 않았다.

학위 취득 후 국내 대학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나타난 것은 60년대 후반부터였다. 물리학의 모혜정(이화여대), 화학의 김수자(경희대), 생물학의 이현순(전 성균관대), 공학의 박순자(전 서울대) 등이 선구적 여성들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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