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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오티스 외국계기업 변신 3년 : 일한다 아메리칸 스타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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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지난 15일 오전 LG·오티스의 경남 창원공장 앞마당. 돼지머리를 앞에 두고 장병우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고사를 지내고 있었다. 이 회사가 이날 출시한 기계실 없는 차세대 엘리베이터 '젠투(GeN2)'의 성공적인 판매와 작업장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얼핏 보기엔 여느 토종 한국 기업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공장을 둘러보고 현장 직원들을 만나면 이 회사가 외국계 기업이라는 점을 곳곳에서 눈치챌 수 있다.

1999년 12월 세계 최대 엘리베이터업체인 미국 오티스가 LG산전의 지분 80.1%를 인수해 출범한 LG·오티스는 지난 3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 회사는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고 있다. 공장이나 빌딩·아파트 건물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두대 중 한대는 이 회사가 생산한 것이다. 외국계 기업으로 바뀐 뒤의 변화를 살펴본다.

◇달라진 회의 문화=임직원들은 전반적인 회사 업무에 관해 이전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맡지 않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도 함께 토의해야 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홍보담당 홍재영 이사는 "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회의 당일 결론짓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면서 "의제로 올라있는 분야에 관한 충분히 준비가 안된 임원은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의시간 중에는 따로 식사 시간이 없기 때문에 간단한 샌드위치·도시락 등을 먹으며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사는 단순한 회의 참석을 위한 국내외 출장을 없애버렸다. 그 대신 국내 본사와 각 공장은 물론 전세계 계열사에 설치된 영상시스템을 이용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의사소통은 영어로=미국계 회사가 된 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모든 임직원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장을 비롯해 임원들은 e-메일은 물론 모든 서류 작성을 영어로 하고 있다. 또 직원들은 사장과 임원진에 보고할 때 주로 영어를 사용해야 하기에 진땀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한 부장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영어를 못하면 임원으로 발탁되지 못한다"면서 "나이가 들어 영어를 하려니 힘이 들지만 그래도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측도 직원들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학원수강료를 지원하기도 하고 토익시험에서 7백30점 이상을 받는 직원에게는 월 5만원씩의 특별 수당을 준다.

◇강도높은 안전 점검=장병우 사장은 "미국 본사의 방침에 따라 회사 출범 후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고객의 안전은 물론 임직원의 안전까지를 고려하는 안전 최우선 경영"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사장을 비롯한 최고 임원진이 직접 한 달에 여덟시간 이상 엘리베이터 설치·보수 현장을 방문해야 한다. 이들은 직접 50여가지 항목으로 짜여진 안전진단 목록에 따라 꼼꼼하게 점검하는 등 이전보다 훨씬 강도높은 안전감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적당히 넘어갈 수 없는 의사결정 구조=일을 하면서 적당히 넘어가기가 제도적으로 쉽지 않도록 변했다.

오티스는 한국회사와는 달리 보고 체계가 이원화돼 있어 보다 객관적이고 엄격한 업무 처리를 요구한다. 송승봉 이사는 "이전에는 보고체계가 회장·사장 등 직계 간부들만 관여하는 중앙 집중식이었지만 오티스가 경영을 맡으면서 담당 임직원이 미국 본사에 직보하는 체계와 사장을 포함한 국내 임원에게 보고하는 체계로 나눠져 있다"고 설명했다. 두개의 라인에서 점검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작다는 설명이다.

임직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직능 조직상 미국 본사 담당임원으로부터 업무 지휘를 받지만, 업무수행에 대한 평가는 한국 법인 사장 등으로부터 받고 있다. 또 업무의 성격에 따라 담당 임원이 회사 내 의사 결정 최고책임자가 될 때가 있어 효율성이 더욱 높아졌다.

창원=유권하 기자

kh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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