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④ '멋과 맛' 알리기 팔 걷어붙인 광주:"21세기엔 굴뚝산업보다 문화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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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빛 고을 광주(光州)는 멋과 맛이 살아 숨쉬는 예향(藝鄕)으로 불린다. 식당·다방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동양화 한 폭과 서예 한 점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남도 여인네의 야무진 손을 거친 맛깔있는 음식도 광주를 찾아 본 사람들이라면 평생 잊지 못한다.

광주는 도심을 관통하던 옛날의 철도 부지까지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만큼 문화·예술 감각이 탁월한 고장이기도 하다.

실제 지난 3월부터 석달동안 열린 제4회 광주비엔날레 당시 옛 남광주역을 비롯한 도심 철도 폐선 부지는 대지미술·야외박물관 기능을 담당한 어엿한 예술 공간으로 활용됐었다.

문학·예술과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주민들의 삶은 16개 시·도와 1백63개 시·군 등을 대상으로 한 문화지수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은 지역별 문화환경과 주민들의 문화 향유 실태를 6개 분야로 나눠 조사한 뒤 그 결과(문화지수)를 지난달 발표했다.

광주는 창작 프로그램·예술인·예술단체 숫자를 수치화한 '문학·예술지수'와 영화관 좌석수, 주민 영화 관람률을 바탕으로 한 '대중문화 지수'에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제조업 위주로 산업화가 진행되던 70∼80년대 광주를 비롯한 호남지방은 바람직하지 못한 국내정치 상황 등에 휘말려 개발 대상에서 비켜나 있었다. 현재도 광주는 타 시·도에 비해 내세울 만한 제조업체가 적은 편이다. 물론 재정자립도도 광역시 가운데 최하위(64%)를 면치 못한다.

하지만 요즘 광주는 축적된 남도의 예술적 소양과 문화적 토양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제조업'육성에 팔을 걷고 나선다. 문화인프라 산업이 그 핵심에 서 있다. 박광태 시장도 취임 당시부터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아 광주의 살 길은 문화·관광도시로 나아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시가 추진하는 문화인프라 산업의 핵심은 ▶문화산업단지 조성▶디자인센터와 전시컨벤션센터 건립▶현대미술관 신축 ▶비엔날레·김치대축제 육성 등이다.

시는 2005년까지 남구 사동 사직공원과 동구 충장로 일대에 이르는 도심 공간 6만5천평을 문화산업단지로 꾸밀 계획이다.

국비·시비와 민자 등 6백44억원을 투입해 영상예술·멀티미디어 기술지원센터,영상문화회관,문화산업이벤트플라자,디지털콘텐츠개발센터,정보·문화산업진흥원 등을 세워 기술과 시설·업체를 집적화시킨다는 계획도 실행단계에 들어섰다.

21세기는 풍부한 지식과 독창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소프트웨어 기술 보유로 국가경쟁력이 결정난다.이와 관련, 유망산업으로 등장하고 있는 분야가 영상예술이다. 이에 시는 1백8억원을 투입해 사직공원내 옛 KBS 광주방송총국(부지 1천9백여평,건평 1천5백여평)에 영상예술센터와 멀티미디어 기술지원센터를 설립 중이다.

이에 앞서 지난 8일 1백99억원의 기금을 갖춘 광주 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문을 열었다. 정보·문화산업진흥원은 소프트웨어(SW)·정보기술(IT)·문화콘텐츠(CT)등 지역 내 정보통신·문화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종합적이며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김영주(52·전 유니와이드테크놀러지 부사장)원장은 "지식기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중장기 시행계획 수립, 창업보육 및 전문인력 양성, 마케팅 지원, 수출 및 해외 진출 지원 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 2005년까지 35억원을 들여 옛 시여성회관 건물에 문화산업 벤처 기업이 입주하는 영상문화회관을 신축하고, 디지털 콘텐츠 개발센터는 충장로 학생회관이 서구 화정동 중앙공원으로 이전하게 되는 2004년 문을 연다.

이미 국비와 시비 1백억원을 확보한 광주디자인센터 건립 계획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9월 디자인센터 건립지역으로 승인해 아직 부지는 결정되지 않았으나 2005년까지 5백25억원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디자인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첨단 디지털 디자인 장비를 갖춘 센터는 인력 양성, 창업보육, 국제교류 지원, 상설전시·판매 등의 기능을 맡아 광주를 '디자인산업의 메카'로 육성하게 된다.

2005년 8월이면 서구 치평동 상무지구에 국제적인 회의와 전시회 등을 유치하게 될 전시컨벤션센터가 들어선다.

지난 9월 기획예산처에서 건축공사비 7백36억여원이 최종 확정된 전시컨벤션센터 건립사업은 광주를 국제 정치·무역·문화 교류의 도시로 거듭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내년 11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이 센터에는 8백∼1천6백명을 수용할 대회의실,부스 5백개를 갖춘 전시장, 무역진흥 기관·은행·세관·비즈니스 센터 등 지원업무 시설도 들어서게 된다.

현재 광주에는 시립미술관과 비엔날레 전시관 등이 있어 어느 도시 못지않은 미술 공간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예향 이미지를 더욱 높이고 시민들의 문화예술 욕구를 충족하며 새로운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현대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동구 궁동 중앙초등학교에 들어설 현대미술관은 2006년까지 7백60억원을 들여 비엔날레 전시 공간,시립미술관 소장품 전시,각종 전시회 개최 시설 등으로 활용된다.

비엔날레와 김치대축제도 광주시가 문화·관광기반 구축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중이다.

제4회 광주비엔날레(3월 29∼6월 30일)는 프랑스 르 몽드 등 외국 언론으로부터 '참신하고 파격적'이라는 찬사를 받는 등 세계적인 미술행사로 자리잡았다.

지난달 열린 제9회 김치대축제도 국내외 관광객 32만여명이 방문할 만큼 전국적인 잔치로 발돋움했다.

시는 이들 대형 이벤트와 소쇄원·식영정·환벽당·취가정·풍암정 등 시가(詩歌)문화 관련 명소를 연계한 관광자원 개발에도 힘을 쏟는다.

2010년까지 북구 충효동 광주호 주변 시가유적을 복원·정비하고 전통문화마을·민속공원·호수생태원 등을 조성하기 위해 건교부에 개발제한구역 관리계획 승인을 요청했으며, 내년 5월부터 부지 매입과 실시설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광주역∼남광주역∼효천역 구간 경전선 도심 철도 폐선 부지는 지난달부터 폭 5∼15m 규모의 시민 휴식공간과 관광 코스로 개발되고 있다.

10.8㎞에 달하는 폐선 부지에는 '빛과 생명의 푸른 길'이라는 대주제 아래 미래·생명·빛·청소년문화·생태환경 등 5개 소주제별 소공원이 들어서게 된다. 광장 4곳과 자전거 도로 등도 들어설 폐선 부지는 선진국 도심속 숲에 손색없는 시민 휴식공간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관광 명소로 떠오를 전망이다.

광주=구두훈 기자

dh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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