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재난 방지 '초일류국'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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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일본의 고베 대지진 10주년을 맞아 고베 시민들이 17일 대나무통에 촛불을 밝히며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고베AP=연합]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46분 일본 고베(神戶)시에서 리히터 규모 7.3의 직하형 지진이 발생했다. 사망자만 6433명이 생겼다. 지진 규모가 워낙 컸지만 재해대비 체계도 허점투성이어서 피해자가 많았다. '안전 대국'을 자처하던 일본의 자존심은 크게 구겨졌다.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사망자 300명"이란 보고를 듣고 대응을 지시한 것은 지진 발생 10시간 뒤였다. 그러고 나서 1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첨단 재해대비 시스템은 세계가 선망하는 대상이 됐다. 지난해 말 발생한 남아시아 쓰나미(지진해일)로 더욱 빛을 내고 있다. 대지진 10주년을 맞아 18일부터 고베에선 유엔 주최로 '재해방지 세계회의'가 열린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모여 일본의 재해방지 노하우를 전 세계에 보급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참석자들의 본심은 지진 발생 후 3초 만에 쓰나미의 높이.도달시간을 알리는 기술, 24시간 위성감시 재해정보시스템 등 일본이 구축한 방재시스템을 알려 달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도 자국 위상을 국제사회에서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이번 회의에서 "선진국의 정부개발원조(ODA) 항목에 '방재'를 신설해 개발도상국의 안전 확보에 도움을 주자"고 제안한다.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지진해일을 예측하는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뜻도 밝힌다. 방재에 관한 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쥐게 됐다.

이런 결과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6개 분야 54개 테마로 나눠 고베 대지진 검증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 대지진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459개 항목으로 정리해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그 덕분에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피해를 원상 복구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플러스로 끌어올리는 성공적인 부활을 했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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