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 무너진 검찰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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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8일자로 단행된 검찰 간부 인사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공직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둥이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이다. 정권 말기의 서너달짜리 소폭 짜깁기용이라 하더라도 이런 기본원칙조차 무시한 인사는 검찰 신뢰를 스스로 실추시킬 뿐이다.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에 이용호 게이트 부실수사 책임자를 임명했다. 그는 이용호 게이트가 특검에 의해 검찰 수사 결과가 뒤집혀 김홍업씨와 아태재단 간부, 당시 검찰총장 등 권력 핵심 실세 연루 사실이 드러나는 바람에 대검 중앙수사부장에서 2월 초 법무연수원 한직으로 전보됐던 사람이다. 문책인사 6개월 만에 법무부로 회생했다가 또 3개월 만에 핵심 요직에 중용된 것이다.

이는 결국 당시 문책이 절실한 반성의 결과가 아니라 여론을 의식한 눈가림식 인사였음을 말해 준다. 현 정권 핵심 인사가 연루된 사건의 부실 수사 책임자가 조기 명예회복된 것은 당시 사건 수사가 정치권에 의해 좌우됐다는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또 피의자 구타사망 사건 지휘책임을 묻는다면서 그 자리에 대형 권력유착 벤처 게이트 부실 수사 책임자를 부활시킨 모양새도 잘못됐다.

법무부 장관 퇴임사에 검찰총장 대국민 사과문을 그대로 베껴 말썽이 된 공보관을 재경 지청 형사부장으로 전보발령한 것도 납득이 안간다. 이런 사람을 대민 접촉이 가장 많고 사건마다 남의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일선에 배치했으니 과연 신뢰가 가겠는가. 현 정권의 잘못 중 하나가 검찰조직의 와해다. 사법시험 서열도, 보직 간의 서열도 무너졌다. 그동안 금기시됐던 선·후배 간 보직 역류마저 자연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정권 말 검찰 조직의 와해가 국가기강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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