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후보 2시간여 깊은 얘기 담판후 포장마차서 '러브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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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6일 0시40분 국회 귀빈식당.

2시간10분간 심야회동을 마친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회담장 밖으로 나왔다. '타결됐느냐'는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盧후보는 "예"라고 짧게 대답했고, 鄭후보는 상기된 얼굴로 옆에 있는 기자들의 손을 부여잡고 악수를 나눴다. 이어 민주당 이낙연(李洛淵)대변인과 통합21 김행(金杏)대변인이 8개항 발표문을 모두 낭독하자 주위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두 후보의 단일화는 이렇게 성사됐다. 극적 타결에 성공한 두 후보는 어깨동무를 하고 국회 근처 포장마차로 이동했다. 오전 1시 넘어 뒤풀이가 시작됐다. 소주잔으로 세차례나 러브샷을 한 뒤 꼬옥 껴안기도 했다. 鄭후보는 두 대변인끼리도 소주 러브샷을 하게 한 뒤 오징어를 집어 각각의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두 후보는 파안대소했다. 盧후보는 이마에 주름이 가득 잡히도록 껄껄 웃으며 "만나보니 의외로 공통점이 참 많더라.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생각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원기(金元基)고문은 "내 정치 생애에서 가장 감동적인 날"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경재(金景梓)선대위 홍보본부장은 "언빌리버블"을 연발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호웅(李浩雄)의원은 "위대한 정몽준 후보에게 잔을 권하는 영광을 달라"며 鄭후보에게 잔을 건네기도 했다. 단일화의 첫발을 뗀 뒤 '포장마차 뒤풀이'는 한시간 넘게 계속됐다.

한편 15일 두 후보가 첫 회동을 한 국회 귀빈식당은 이미 30여분 전부터 기자들 70여명이 실내를 가득 메워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오후 10시25분 盧후보가 5분 먼저 도착했다. 鄭후보는 경인방송 생방송 토론회를 마친 뒤 곧장 인천에서 달려오느라 약속시간보다 2분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앞에서 볼 때 盧후보가 왼쪽, 鄭후보가 오른쪽에 나란히 서서 악수하며 포즈를 취했다.

잠시 후 자리에 앉은 盧후보는 몇차례 입술을 적시는 등 긴장한 모습이었다. 鄭후보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히 인사를 나눴으나 두 후보 모두 목소리가 너무 작아 50여㎝ 떨어져 앉은 상대방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날 오후 잠실에서 열렸던 교총 주최 교육자대회에서 鄭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강하게 비난한 데 대해 盧후보가 "명연설이었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특히 '단일화 방식도 논의할 건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하겠다"(鄭후보), "넓게도, 세밀하게도 얘기하겠다. 뭐든 제약없이 얘기하겠다"(盧후보)고 각각 의욕을 보였다. 이어 盧후보가 단호한 목소리로 "해보죠"라고 말한 뒤 두 후보는 배석자 없이 회담에 들어갔다.

회담 전 두 후보는 각각 측근들과 최종 대책회의를 하며 전략을 가다듬었다. 盧후보는 오후 9시 당사에서 선대위 본부장단 회의를 가진 뒤 "실수하지 않고 잘하고 오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鄭후보도 오후 대책회의에 이어 인천에서 오는 버스안에서 다시 구수회의를 갖고 막판 숙의를 거듭했다. 경인방송 생방송 직전에는 혼자서 방송국 주변을 산책하며 구상에 몰두하기도 했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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