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끼리 협조는 못할망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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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외교부 대변인(국장)이 정세현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정면 반박하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특히 丁장관은 나라의 주요 안보 현안을 놓고 각 부처의 의견을 조정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상임위원회 의장이다.

부처 간 벽이 높은 현실에서 외교부 대변인이 통일부 장관에게 일침을 놓았으니 정부 모양새가 우습게 됐고, 또 丁장관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됐다.

이런 파장을 모를 리 없는 외교부가 丁장관 발언을 공개적으로 반박한 데는 대북 중유 지원 중단 문제를 결정하는 막바지 단계에서 한·미·일 3국 간 공조에 금이 가서는 안된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는 듯하다.

3국은 대북 중유 지원 문제와 관련해 "14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이사회의 결정이 곧 각국 정부의 입장"이라는 공조의 틀 아래 공식 발언을 아껴왔는데 丁장관 발언이 이를 훼손했다고 본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丁장관 발언은 3국 3색을 공공연히 드러낸 데다 교섭 중인 내용까지 흘려 3국 공조의 정신에 금을 가게 했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3국 공조는 평화적 해결 원칙과 더불어 3국 정상이 지난달 합의한 양대 방침이었다.

북한이 3국을 이간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북한이 먼저 핵 개발을 폐기해야 한다"는 하나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다.

실제 미국은 외교 채널을 통해 丁장관 발언의 진위와 우리 정부 입장을 문의해 왔다고 한다. 외교부 자료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의 대외용 색채가 짙고, 그만큼 정부 전체의 신뢰도 떨어진 셈이다.

통일부에선 丁장관을 두둔하는 분위기다. "丁장관이 대미 협상의 악역을 맡은 것으로 보면 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정황상 丁장관 발언이 외교부와 통일부 간의 역할 분담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 두 부처 간의 정보 교환이 매끄럽지 않고, 사전 조율이 부족한 데 따른 돌발성 발언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일과의 공조에 앞서 부처 간 협력 체제부터 새로 짜야 하지 않을까싶다.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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