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재난 닥쳐도 생존력 강한 인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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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과연 중동의 광인인가, 아니면 아랍의 영웅인가. 무모하게 초강대국 미국과 맞서고 있는 후세인의 '전쟁광'적 기질 때문에 전쟁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 서방 세계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후세인은 집권 이듬해인 1980년 같은 이슬람국인 이란을 침공해 8년을 싸웠고 90년엔 쿠웨이트를 침공해 걸프전을 일으켰다. 88년 북부 쿠르드 반군 마을에 겨자가스와 사린 등 신경가스를 살포해 5천명의 자국민을 몰살한 잔혹성은 "후세인은 정신이상자"라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비난의 근거가 돼왔다.

그러나 90년대 초 미 중앙정보국(CIA) 심리분석가로서 후세인을 분석했던 제럴드 포스트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후세인을 미치광이나 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생각하면 오판"이라고 경고했다. 후세인의 전기 작가인 사이드 아부리시는 더 나아가서 "그는 20세기 아랍 지도자 사상 가장 뛰어난 조직적 능력을 보여준 사람"이라고 평했다. 후세인은 걸프전 패배 이후 유엔의 가혹한 제재 아래서도 국내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고 아랍 민족의 지도자라는 평판까지 얻었다. 석유 수출 대금으로 러시아·프랑스·아랍 각국들로부터 값비싼 제품을 수입해 이들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했다. 이는 후세인이 전략에서는 실책을 저질렀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노련한 전술가적 자질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포스트 교수는 설명한다.

후세인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생존력이 탁월한 인간형이란 분석도 있다. 전쟁과 재난에서 살아남은 자기보호형 인물이라는 것이다. 후세인은 고아로 자란 데다 원했던 육군사관학교 입학이 좌절되는 등 불우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정부와 군부 최측근에 자신의 아들 등 친족만을 배치하고 대통령 수비대에 고향인 티크리트 출신만을 배치한 것도 절대 남을 믿지 못하는 생존자형 인간이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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