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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살아남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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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금융위기가 오기 전까지는 사실 우리 외교는 별반 문제될 것이 없었다. 냉전시대와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외교는 그저 미국과 잘 지내기만 하면 되었다. 복잡할 것도,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에서는 미국과의 좋은 관계가 제3국 어느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쉬울 수밖에 없었다.

금융위기는 경제적 현상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은 사실은 정치적 현상으로 끝을 맺어가고 있다. 즉, 지구촌 정치를 단일지도 체제(팍스 아메리카나)에서 집단지도체제로 바꾸는 정치적 대변혁을 가져왔다. G20(주요 20개국)이라는 다극화 구조 하에서는 이제 더 이상 미국하고만 잘 사귀어서는 절대 안 된다. 역사적으로 다극화 구조에서는 항상 외교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다극화 구조의 대명사인 2000여 년 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서는 궁극적으로 외교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였다. ‘합종연횡’이라는 말도 그때 생긴 것이다. 다극화 시대는 엄청난 위기와 동시에 기회를 제공하는 시대다. 제1, 2차 세계대전은 모두 다극화 시대가 낳은 비극적 산물이었다. 반면 일본은 100여 년 전 다극화 시대를 잘 활용함으로써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화려하게 부상하였다.

핵무기의 존재로 사실상 무력의 위력이 크게 줄어든 오늘날 외교력의 중대성은 거의 절대적이다. 특히 우리같이 북한이라는 숙명적 변수를 가진 나라에서는 외교력은 절체절명의 함수다. 이번 천안함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외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미·중 간 헤게모니 쟁탈전의 한가운데에서 생존을 건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외교력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는 가장 큰 무기다.

그뿐 아니다. 리비아 문제, 대이란 제재 문제 같은 절박한 외교적 현안이 날로 산적해 가고 있다. 경제도 이제 외교가 끌어 주지 않으면 비상하기는 어렵다. 원자력 발전, 고속 철도망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는 이제 외교력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힘들다. 우리가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음으로써 양국 다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을 받았는가? G20은 세계 GDP의 90%를 차지하는 나라들이다. 원숙한 외교로 이들 나라와 상호 깊은 신뢰와 우호의 관계가 수립될 때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올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는 잘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외교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징후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MB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외교의 중요성을 선포하고 외교력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일이다. 최고의 인재들이 이제 경제보다 외교로 가야 한다. 외교관 선발과 양성, 특히 국가적 협상력 배양에 50년 전 경제개발을 하듯이 매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21세기 한국을 이끌어 갈 새로운 외교 비전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임기응변이 아니라 그러한 비전을 바탕으로 외교정책에 원칙과 일관성을 불어넣어야 설득력도 있고 세계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창조적 융합주의’라든가 ‘창조적 균형주의’ 같은 말로 우리가 이 다극화 시대의 각축, 특히 미·중 간의 줄타기를 어떤 원칙에 의해 할 것인가를 선언하는 것은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방위산업의 상당부분을 외교산업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IGM)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