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 느끼는 양보 강요는 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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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저는 일곱살짜리 아들과 여섯살 난 딸을 두고 있어요. 남들은 아들딸 낳고 잘 산다며 부러워하지만 저는 한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두 아이의 싸움으로 너무 힘들답니다. 급기야 어제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투다가 큰 아이가 둘째 아이 얼굴을 손톱으로 긁었습니다. 야단을 치고 매도 대 봤지만 그 때뿐이고 또 티격태격하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가정에서 흔히 겪는 괴로움입니다. 어느 정도 형제 간의 다툼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가 되면 '형제 간 경쟁장애'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대개는 부모의 사랑을 독점하던 큰 아이가 동생이 태어나면서 사랑을 나눠 가져야 되는 상황에 닥치면서 문제가 시작되지요. 잘 가리던 대소변도 실수하거나 갑자기 아기 말투가 되기도 합니다.

유독 어머니에게 더 매달리고 칭얼대는 등의 퇴행행동을 하기도 하며 말을 더듬기 시작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직접 상대를 괴롭히는데 연년생 아이들이라면 이런 형제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 있습니다.

대개는 큰 아이의 자신감 부족이 문제가 되는 수가 많습니다. 동생이 생겼어도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하면 동생은 자신의 상대가 안 된다고 여기고 여유를 갖습니다.하지만 자신이 동생만 못하고 부모의 사랑을 뺏겼다고 생각하면 동생을 힘으로 누르려고 합니다. 형제들끼리 싸울 때 "네가 오빠인데 참아야지"라며 일방적으로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건 금물입니다. 아이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 오히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미리 이야기해 관심을 갖게 하고 동생이 새로 생겼어도 큰 변화를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손길이 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이 큰 아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물건을 부수거나 다치게 하는 등 심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아이들의 다툼에 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들끼리 억울함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하는 것도 사회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김동현<김동현 신경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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