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어린이 부모 모임 '단심회'>"말괄량이 된 우리 딸 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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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창백한 얼굴과 파란 입술, 갸날픈 호흡.'

심장병 만큼 주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질환도 있을까. 소설이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애틋한 사연의 주인공은 대부분 심장병이다. 지순한 사랑을 묘사한 소설 '독일인의 사랑'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도 심장병으로 숨졌으며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도 비록 병명이 표현되진 않았지만 증상으로 보아 심장병이 가장 유력하다.

단심회(單心會)는 심장병 어린이를 둔 부모들의 모임이다. 단심이란 원래 두 개씩 있어야 할 심실과 심방이 한 개 뿐인 선천성 심장기형을 말한다. 한개의 심실이나 심방에서 동맥피와 정맥피가 섞이게 되므로 그대로 놔둘 경우 대부분 수개월 내에 사망하게 된다.

올해 초 서울아산병원 소아흉부외과 서동만 교수에게 수술받은 어린이 환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이 모임은 부천세종병원 등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어린이 부모들까지 합세해 현재 회원이 50여명에 달한다.

지금은 부모들끼리 만나는 친목단체지만 앞으로 전문가들을 초빙해 강연회도 가질 예정이다.

서울 N초등학교 2학년 유모 어린이(9)는 태어나자마자 고열과 함께 황달 증세 등이 나타났다. 놀란 부모에게 의사가 들려준 말은 "아기의 숨소리가 이상하다. 심장에서 잡음이 들린다"는 것이었다.

초음파 검사 결과 단심증으로 나타났다. 수술하지 않으면 1백일을 넘기기 어렵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그러나 세 차례에 걸친 수술 끝에 지금까지 아무런 탈 없이 완치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단심회 회원인 어머니 K씨는 "딸 아이가 기죽지 않고 자라도록 하기위해 일부러 학교 단체활동 등에 적극 참가토록 했다"며 "이젠 학교에서 알아주는 소문난 말괄량이 골목대장"이라고 말했다. 수 년 동안 생과 사를 오가며 투병을 해온 어린이답지 않게 해맑고 씩씩하다는 것.

'심장병 어린이=측은한 동정의 대상'이란 일반인들의 편견이 문제다.

단심회를 비롯한 환자들의 동호회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은 최신 질병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심회를 만든 주역인 서원길 회장은 "선천성 심장기형은 워낙 복잡하고 어려운 질환이라 부모들에게 열심히 공부할 것을 강요한다"고 말했다.

2개의 심방과 2개의 심실에 연결되는 각종 혈관들이 어지럽게 꼬여 있어 의대생들조차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분야가 바로 선천성 심장기형이다.

수술 후에도 와파린 등 심장의 혈액이 걸쭉해지지 않고 묽게 만들어주는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데 잘못 사용할 경우 출혈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게다가 심장이 약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가벼운 감기도 자칫 폐렴 등 중대한 감염질환으로 악화돼 숨지는 불상사도 생길 수 있다.

자신도 단심증 자녀를 둔 서회장은 사업차 외국을 자주 다니면서 얻은 정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수집한 최신 정보를 모임에서 발표하기도 한다

부모가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서로 독려하는 것도 단심회를 만든 중요한 이유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나쁜 유전자 때문에 자녀에게 몹쓸 병이 생겼다고 자학한다.

그러나 서동만 교수는 "단심증을 비롯한 선천성 심장기형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유전 때문이라며 부모가 스스로 죄의식에 빠지는 것은 자녀들의 치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s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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