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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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낙방(落房)에 홀로 남아

먼 마을에서 참나무 장작패는 소리를

약(藥)으로 듣는 늦은 겨울날 오후

-조정권(1949∼)'甲寺에서' 전문

한국을 주제로 다룬 모든 매체에 등장하는 공통된 부제(서브타이틀)는 언제나 '조용한 아침의 나라'다. 서양의 사제가 폐쇄된 극동의 반도에 첫발을 내디디며 느꼈던 첫인상이 일종의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 외국에서 출판된 한국여행 안내서에도 똑같은 부제가 붙어 있다. 이제는 정반대로 바뀌었는데도 말이다. 온 집안 구석구석에서 들릴 만큼 볼륨을 한껏 높인 TV소리로부터, 지역사회의 축제를 위하여 가설무대에 설치된 고성능 음향기기의 소음, 그리고 심지어는 바다의 해안유람선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유행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어느 곳도 시끄럽지 않은 데는 없다. 먼 마을에서 장작 패는 소리를 '약으로' 듣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김광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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