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우격다짐' 코너 이 정 수 썰렁하지? 근데 왜 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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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 나한테 전화했다면 알아둬야 할 것이 있어. 내 전화는 17대 1이야. 열일곱번 전화하면 한번 받아. 웃기지, 웃기잖아. 웃기면 메시지 남겨. 메시지 안남기면 또 돌아온다."

요즘 KBS '개그 콘서트'의 1인 코미디 '우격다짐'으로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정수(24).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뚜우'하는 연결음 대신 그의 개그를 패러디한 성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개그는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으로 활용될 정도로 큰 반응을 얻고 있다.

개그맨 이정수라는 이름은 아직 낯설다. 오히려 그가 출연하는 코너 이름 '우격다짐'을 떠올리면 "아하! 그 썰렁한 친구"라며 무릎을 치게 된다. 지난 9월 초 그는 파격적인 개그를 들고 나타났다. 그의 개그는 한없이 썰렁하고 진지하다.

"은행은 은행인데 이자가 없는 은행이 뭐∼게?"

"그건 뮤직뱅크지."

이런 식이다. 관객에게는 '감히' 반말투다. "추워 죽겠지, 추우면 박수 쳐. 억지로 하지 마. 짜고 한 줄 알잖아." 그것도 모자라, "웃기지, 웃기잖아"라며 억지 웃음을 강요한다. 한참 상승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이 위기 상황. 그는 결정타를 날린다. "내 개그는 항상 이런 식이잖아. 너무 기대하지 마!" 좌중에선 끝내 웃음이 터져나온다.

"사실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어요. 관객에게 친구를 대하듯 반말하는 건 대학로 공연에서나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TV에서도 반응이 커요. 보는 개그가 아니라 함께 대화한다는 느낌이 나서 그럴 거예요."

그는 지난 4월 KBS 개그맨 공채 17기로 방송가에 진입했다. 그 전엔 몇달간 대학로 공연 '갈갈이 패밀리' 멤버로 활동했다. 말이 멤버지 실제로 그가 한 일은 전단 돌리기였다.

그는 여기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잘했어요. 젊은 연인, 중년 부부, 또래 친구들까지 말 한마디만 하면 다 저희 코미디를 보러 오는 거예요. 대중을 끌어들이는 말 주변이 있었나 봐요." 다른 사람들이 하루 20명을 유치할 때 그는 하루 50명은 너끈했다고 하니 꽤 뛰어나긴 했나보다. 그렇게 신나게 전단 돌리기를 하던 중 올해 초 '갈갈이 패밀리'의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 주요 연기자들이 잠깐 쉬는 틈에 레슬링 선수 복장을 하고 무대에 튀어나왔다 사라지는 미미한 역할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행복했기에.

"중학교 때부터 개그맨이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친구나 가족들은 모두 뜯어말렸죠. '항상 말 없이 조용한 네가 누굴 웃기느냐'는 거였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제가 상상하는 것들이 한없이 웃겼고 그걸 남들한테 보여주면 반응이 나타날 거라고 확신했죠. 결국 제가 이긴 셈이죠?"

어쨌든 그는 개그맨의 엘리트 코스를 순탄하게 밟고 있다. 마이너리그인 대학로 공연에서 몇개월도 안돼 메이저리그인 공중파 코미디에 나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인기가 실감나지도 않고, 인기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그저 웃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신성하고 훌륭한 일이기 때문에 그 길을 갈 뿐"이란다.

그는 요즘 '개그콘서트'에 선보일 또다른 1인극을 준비하고 있다. 1인 코미디는 아이디어도 혼자 내고, 썰렁해지면 스스로 수습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이지만 그는 긴장감을 즐기는 편이다. 정통 코미디도 스탠딩 코미디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개그는 신성한 거야. 난 그 길을 간다. 이건 웃으라고 하는 얘기 아니야." 파격적인 말투와 신선한 아이디어로 인기 몰이에 나선 개그맨 이정수씨.

이정수의 '내 개그는…' 말말말

▶"내 개그는 복권이야. 잘되면 대박이고 안되면 5백원이지"

▶"내 개그는 'TV 유치원'이야. 혼자서도 잘해요."

▶"내 개그는 만화야. 재미 없으면 그냥 넘어가."

▶"내 개그는 2%야. 항상 부족해."

▶"내 개그는 변비야. 일주일 모아 한방에 터뜨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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