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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발된 현대전자 매각대금 1억弗 송금지시 누가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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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반도체)의 영국 스코틀랜드 공장 매각대금 중 1억달러가 증발된 사건에 대해 회사 측과 당시 관계자들은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누가 지시했는지, 이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오리무중이다. 하이닉스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실체가 궁금하다"며 "실체를 알려면 정몽헌 회장에게 물어보라"고 말해 鄭회장 개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특히 당시 현대전자 측이 외자유치 발표를 하면서 이례적으로 매각금액을 발표하지 않는 등 미심쩍은 행적이 많아 처음부터 현대전자가 이 돈을 빼돌리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날아간 1억달러=당시 영국법인장이었던 黃모(개인사업)씨는 "본사 자금팀에서 현지법인에 1억달러를 현대 알카파지(현대건설의 UAE 현지법인)로 보내라는 공문을 받아 당시 관리부장이 집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黃씨는 왜 본사가 아닌 현대건설 자회사로 돈을 보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당시 회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고만 말했다.

그는 "박종섭 당시 사장이 지시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몽헌 회장이 지시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즉답하지 않고 "회사 지시에 따랐다"고만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자금팀장이었던 김진홍(현 영국법인 관리부장)부장은 본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자금팀이 영국법인에 그런 공문을 보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이연수 전 외환은행 부행장은 "그무렵 자금 관련 자료를 요구했으나 자금담당이던 鄭모 상무가 걱정말라며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아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鄭상무와 부실채권 상각처리를 주도한 박종섭 사장이 관련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鄭상무는 지난달 31일 전화통화에서 "당시 하도 많은 문제들을 처리해 스코틀랜드 공장 건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측은 "연결재무제표 등 당시 자료를 확인한 결과 2000년 5월 영국 스코틀랜드 현지 반도체공장의 매각대금 1억6천2백만달러 중 1억달러가 알카파지사로 송금된 것을 확인했으며, 연말 회계에서 대손충당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커지는 의혹들=외환위기 뒤인 2000년 당시엔 기업들이 구조조정 실적을 알리기 위해 해외매각이 성사되면 즉각 매각규모 등을 자세히 발표했었다. 그러나 현대전자는 유독 이 건에서만은 매각대금을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1억달러를 빼돌리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현대전자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매각한 회사와의 비밀 약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매각대금이 1억6천만달러였다고 보도했다.

두번째는 알카파지사 송금액 1억달러에 대해 2000년 말 회계에서 신속하게 1백% 대손충당금을 쌓았다는 것이다. 이 돈은 명목상 단기대여금으로 돼있었다. 당시 현대전자는 유동성 위기가 불거져 회사채 신속인수 등으로 겨우 파산을 면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 돈을 받기 위한 노력을 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대손충당금을 쌓아 받을 수 없는 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한 의문은 삼일회계법인이 작성한 당시 감사보고서에도 나타난다. 삼일회계법인 김영식 전무는 "1억달러를 대손충당해 회계 처리상 '적정 의견'을 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그러나 워낙 큰 금액의 손실이라 감사보고서에 관련 내용을 명시했으며, 당시에도 이 돈을 받을 의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알카파지사가 현대건설의 UAE 현지법인으로 돼있으며, 올 사업보고서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회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회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런 의혹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당시 대표이사 박종섭 사장과 정몽헌 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며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양선희 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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