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에게 쏠린 시장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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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시장은 괴팍하고 변덕스럽다. 살아있기 때문에 주위의 환경변화에 바로 바로 반응하는 것이다. 사상 처음 좌파정권이 들어서게 된 브라질 금융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일요일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노동자당의 룰라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월요일로 옮겨갔다. 금융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실은 그게 이미 예고된 그의 당선보다도 더 궁금한 일이었다. 시장은 이미 그의 당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메시지를 충분히 보내긴 했지만 실제로 어떨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월요일 상파울루 증시는 처음부터 비실거리더니 결국 4.4% 하락한 채 마감했다. 통화(헤알)가치도 1% 이상 떨어져 달러당 3.78헤알을 기록했다.

투자가들이 여전히 그를 '불안한 인물'로 보고 있다는 뜻일까.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당선 확정 후 첫 대국민 연설을 통해 최우선 정책과제로 기아(饑餓) 퇴치를 꼽았다. 이걸 놓고 보수·기득권층은 골수 노동운동가 출신이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빈정댔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우는 일을 먼저 강조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나왔다.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은 결선투표를 앞둔 지난주 증시가 11%나 올랐던 사실에 주목한다. 그를 여전히 믿지 못할 인물로 치부한다면 선거를 코앞에 두고 어떻게 주가가 이렇게 올랐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이날 주가 하락은 기분을 좀 망치긴 했지만 단기 차익 실현에 나선 투자자들의 자연스런 행동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헤알화 가치 하락도 기업들이 수입대금 결제 등을 위해 이날 달러화를 많이 매입하는 바람에 빚어진 것이며, 국가위험도 증가 차원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렇게 엇갈리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역시 브라질의 앞날이 그만큼 가변적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결국 룰라가 앞으로 어떤 색깔로 경제팀을 짜고, 거기서 어떤 마스터플랜을 내놓을지 지켜봐야 정확한 판단이 설 것 같다.

룰라는 물론 시장의 촉각이 이렇게 곤두서 있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20년 동안이나 지지한 빈민들과 노동자들을 생각해야 한다. 양쪽을 다 만족시키는 일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상파울루에서

sims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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