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대중의 지혜 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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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중의 지혜
원제 The Wisdom of Crowds
제임스 서로위키 지음, 홍대운·이창근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360쪽, 1만5000원

적대적 공범자들
임지현 지음, 소나무, 368쪽, 1만5000원

대중은 현명한가 우매한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소수 전문가 엘리트에게 먼저 달려가 물어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대중보다 전문가가 더 현명하리라는 기대 혹은 상식 때문인데, 2004년 미국에서 출간된 '대중의 지혜'의 저자 제임스 서로위키는 그같은 상식을 뒤집는 주장을 한다.

저자는 '뉴요커'의 논설위원이자 '뉴욕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의 경영 칼럼니스트. 그는 "전문가 말만 듣고 행동하면 엉뚱한 데 비용을 낭비하기 십상이다. 누가 천재인지 찾아다니기보다는 대중에게 답을 묻는 것이 현명하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대중이란 개념에는 천재들도 포함된다. 근거로 제시한 대표적 사례는 주식시장에서 보이는 대중들의 판단이다. 예컨대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공중 폭발한 일이 있다. 폭발 8분 후 그 소식이 주식시장에 전해졌고 곧바로 투자자들은 발사 계획에 참여한 네 개 기업의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네 개 기업 중 고체엔진 추진 로켓을 만든 머튼 티오콜사의 주식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아 하루 만에 12%가 떨어졌다. 다른 세 곳은 낙폭이 3% 정도였다.

폭발 사고의 책임에 대한 어떠한 공식 언급도 없던 상황이었고, 해당 기업 대주주들이 내부자 거래로 투매를 한 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다음날 '뉴욕 타임스'는 "사고의 원인에 대한 단서는 없다"고 선언했고, 6개월이 지나서야 사고조사위원회는 티오콜사가 만든 추진로켓에 문제가 있음을 밝혀냈다. 저자는 "언론의 판단이나 월스트리트의 사기행각과 무관하게 주식시장이 투자자들의 집단적 판단을 이끌어내는 메커니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스포츠 도박''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의 시스템''선거 결과와 영화 흥행 예측'등을 또다른 예로 제시하고 있다. 서로위키가 말하는 '대중의 판단'은 엄밀히 말하면 '시장의 판단'을 의미한다. 시장의 판단이 옳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식 배심원제를 비롯한 다수결 민주주의 사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이어진다.

대중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주식시장의 거품'이나 '폭동'과 같이 잘못된 집단적 결정을 내리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이같은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서로위키는 '의견의 다양성'과 '개인의 독립성'을 제시했다. 집단의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다양한 견해를 개진할 수 있을 때 그 집단이 내린 판단이 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훌륭한 리더가 되는 길은 결국 "각 개인들이 가능한 한 독립적으로 사고하게 해 현명한 집단을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시장의 지혜'라고 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을 굳이 '대중의 지혜'라고 포괄적으로 일반화한 점에 대해선 좀 더 생각이 필요할 것 같다. '적대적 공범자들'은 대중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함께 읽어볼 만하다.

저자인 임지현(한양대 서양사) 교수는 '대중과 독재'라는 부분에서 "20세기 대중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류가 경험한 파시즘.나치즘을 비롯한 각종 근대적 형태의 독재는 밑으로부터 대중들의 광범한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제임스 서로위키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떠받치는 힘으로 제시한 '대중의 지혜'가 그의 논리에 따르면 대중의 복합성을 보지 못한 부분적 고찰에 불과하다.

임 교수의 대중 논의는 '대중이 현명하냐 우매하냐'라는 식의 문제 제기를 넘어 대중이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 근대 사회의 작동원리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 좌파 독재와 우파 독재를 불문하고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대중이 참여했음을 고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임 교수는 "대중의 의지와 욕망이 과연 자율적으로 형성된 것이냐"고 묻는다. 이는 제임스 서로위키가 제시한 '다양성과 독립성'이란 전제조건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임 교수의 논리를 한 걸음 더 전진시켜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미국 대중의 판단은 과연 옳은 것이고 공공선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서로위키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하다. 임 교수는 부시 대통령의 미국 민족주의와 빈 라덴의 이슬람 민족주의를 '적대적 공범'이라고 싸잡아 비판하며 이들을 지지하는 데 동원된 대중도 비판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말한다.

배영대 기자

*** 책갈피

"어떤 질문을 던지거나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경우, 집단 구성원들의 평균 해답은 가장 뛰어난 구성원의 해답만큼 훌륭할 것이다. 대개 평균이란 '보통 수준'을 의미한다. 그러나 집단의 지혜가 개입되면 평균은 '탁월함'으로 변한다…중요한 것은 뛰어난 개인이 항상 그렇게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중의 지혜' 중에서.

"'대중 독재'라는 새로운 용어로 스탈린주의.파시즘.나치즘.주변부의 개발독재 등 20세기의 좌파 독재와 우파 독재를 아우르려는 나의 시도는 강제와 폭력이라는 피상적 이미지의 물밑에서 작동하는 대중의 자발적 동원 메커니즘을 드러냄으로써, 아래로부터의 시각에서 20세기 독재 체제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적대적 공범자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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