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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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한국적인 월드뮤직은 어떤 겁니까'. 방송을 진행하면서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것은 월드뮤직에 빠져든 이후 지금까지 내 머릿속을 맴도는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과 스타들을 보면서 느끼게 된 건, '그 나라만의 고유한 색채가 가미될 때, 그 음악(문화)은 세계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점은 월드뮤직계에서는 '불변의 진리' 같은 것이다.

월드뮤직계의 슈퍼스타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성공비결을 '고유(전통적인)의 색채를 적절히 가미했기 때문' 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떻게 세계적인 음악이 될 수 있는가'라고. 결국 우리 음악도 세계화되기 위해선 차별화 된 '우리만의 고유한 색깔'이 현명하게 가미돼야만 한다.

해금연주자 정수년 교수의 앨범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의 전통악기인 해금이 주인공인 음반이다. 해금은 현을 활대로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찰현악기로, 흔히 서양의 바이올린과 비교된다. 국악에선 그 비중이 매우 큰 악기며 특유의 애절한 음색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이 음반은 두 가지 가능성을 담은 걸작이다. 첫째는 한국적인 월드뮤직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우리만의 색깔을 듬뿍 담았으면서도 외국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설득력 있는 음악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의미는 '국악의 대중화'를 꾀한다는 점이다.

솔직히 우리의 전통음악임에도 국악은 대중에게 그리 가깝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정수년 교수는 그러한 국악을 개량해 대중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선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타이틀곡인 '세상에…'는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명곡이다. 애절한 해금연주와 투명한 피아노 소리, 그 사이에 흘러나오는 여성코러스는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아름다움이란 실체가 있거나 없거나 그 느낌만으로도 행복을 자아낸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아름다움이 있다. 아이의 웃음, 엄마의 사랑, 푸른 바다….' 속지에 실린 곡 설명도 아름다운 연주에 더욱 큰 힘을 실어주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면 문득 국민학교(그때는 이렇게 불렀다)시절이 잔잔히 떠오른다. 새까맣게 손때 묻은 책상과 예외없이 그 중간에 칼로 그어져 있던 38선, 창문을 통해 또랑또랑한 눈망울들을 비춰주던 한줄기 따사로운 햇살 등등.

'아리랑''한 오백년''진주유희'같은 전통민요의 지혜로운 재해석과,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공(空)''그리움'' 어린 왕자''여행길' 등 창작곡의 수준 높은 완성도는 음반 전체의 균형미와 안정감으로 이어진다.

이 앨범이 매년 1월말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미뎀(국제음반박람회)'에도 꼭 소개됐으면 한다. 한국음악의 세계화(또는 국제화)는 이렇게 한발짝씩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가져본다.

송기철(대중음악 평론가 / MBC FM 송기철의 월드뮤직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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