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도청 논란]국회 정보委 파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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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도청(盜聽)의혹이 걷잡을 수없이 확산되고 있다. 25일 당초 예정된 국회 정보위는 열리지 못했다. 표면적으론 전날 민주당 함승희(咸承熙)·김옥두(金玉斗)의원의 폭언에 대한 한나라당의 사과 요구가 걸림돌이었지만 근본적으론 도청 신경전이었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과 국정원은 장외에서 격돌했다. 정보위 유회 탓에 2001년도 결산안 통과를 위한 본회의도 무산됐다.

◇"도청 공화국이냐"=한나라당은 "온 나라, 온 국민이 도청 공포에 떨고 있는 도청 공화국"(南景弼대변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청원(徐淸源)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대한민국 정·관계, 언론계 인사를 도청한 것은 공산주의·독재정권에서도 없던 일"이라며 "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국정원장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한다"고 말했다. 의총에선 국정원이 즉각 진상 규명하고 국정원장 등 도청 지시자를 엄벌하며 검찰이 즉각 수사에 나서라는 결의문도 채택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아니면 말고식 폭로'라고 규정했다. 정균환(鄭均桓)총무는 "군사정권·공작정치의 원조는 한나라당"이라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맞받았다.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도청 방지용 휴대전화를 사용 중이라고 밝힌 것과 싸잡아 "국민 불안을 부추기고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공격했다.

◇"공작정치 원조"=민주당은 정형근 의원을 집중 공격했다. 한화갑(韓和甲)대표는 "鄭의원은 안기부에서 공작정치와 고문·도청을 한 원조"라고 비난했다.

김옥두 의원은 "鄭의원이 출처를 밝히지 않고 국정원의 현장 검증 요구에도 불응하는 것은 스스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공격했다. 민주당은 鄭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감사원에선 도청 여부를 감사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형근 의원은 한나라당 의총에서 "도·감청법이 제정된 뒤엔 도청해선 안된다"며 "과거는 그 시대의 산물"이라고 받아쳤다. 또 "도청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현장검증 요구에 대해선 "이미 (도청)시설을 다 빼돌리고 담당 국은 갈라서 은폐해 놨다"며 "이제 와 40만평이나 되는 국정원 건물 어디에서 뭘 보자는 것인지 가당찮다"고 말했다.

鄭의원은 이날 청와대 박지원 비서실장의 국제통화 도청 자료를 공개했던 것과 관련, "朴실장이 사전에 잘 아는 경찰 간부를 비롯, 사람을 넣어 네 번이나 (비공개를)부탁했다"고 주장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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