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라크공격론 수위 낮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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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 핵개발 파문이 불거지면서 미국의 이라크 공격 준비에도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21일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 개발 의혹과 관련해 "우리는 또 한번의 외교적 노력을 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지금까지 평화적인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해왔다"며 "후세인이 유엔이 정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우리는 그 자체가 바로 정권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북한의 핵개발 사실이 드러난 시점과 맞물려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 핵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규모 군대가 동원되는 이라크 군사작전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미국 정계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라크엔 군사적 수단이란 강경책을 쓰면서 북한문제는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데 따른 정책의 일관성 문제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미국 의회 일각에서는 이라크 문제보다는 북한 핵문제 해결이 더 시급한 과제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밥 그레이엄 상원 정보위원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TV 시사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라크보다는 북한이 더 위험하다"면서 "북한은 이미 두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그 이상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가 제출한 대 이라크 무력사용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다시 군사작전 신중론 쪽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차카 파타 하원의원은 "만약 이라크 결의안에 대한 투표를 하기에 앞서 북한의 핵개발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투표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라크의 위협은 가상적인 미래의 것이지만 북한의 핵 위협은 현실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외교적 난관도 이라크 공격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러시아 및 중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이지만 두 나라는 이라크 군사작전에 대해 여전히 비판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문제에 대한 두 나라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이라크 공격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의 양보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은 21일 새로운 대 이라크 결의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에 배포했다. 이 안은 이번주 중 비상임이사국을 포함한 안보리 전체회의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이 결의안은 미국이 종전에 마련했던 결의안 초안보다는 다소 완화된 것이지만 "이라크가 유엔 결의를 위반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안보리 논의를 거치되 미국의 군사공격에 대한 승인은 필요 없다"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영준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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