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불평등과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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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의 부자가 전체 부(富)의 3분의 1을 가진 나라. 바로 미국이다. 하위 90%에 속한 사람들 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소득 불평등이 제일 심하다.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이 앞다퉈 도입된 1990년대가 분수령이었다. 80년에 미국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보수가 직원보다 42배쯤 많았는데 2007년엔 344배로 격차가 확 벌어졌다. 평균 1330만 달러(약 155억원)인 미국 CEO들의 연봉은 유럽·일본 CEO들과 비교해도 각각 두 배, 아홉 배나 된다.

금융위기로 빈부 격차가 더 커지자 이들의 어마어마한 몸값은 선망보단 분노의 대상이 돼버렸다. 타블로이드 신문 ‘뉴욕 포스트’가 “천천히 해먹어, 이 탐욕스러운 자식들아!”라고 기사 제목을 뽑았을 정도다. 오바마 정권이 이전 부시 정부 때 도입된 ‘부자 감세(減稅)’를 끝내고 ‘부자 증세(增稅)’를 하려는 데엔 이런 국민 정서가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높다. 일과 투자에 대한 의욕을 꺾어 결국 저소득층에 돌아갈 경제적 이익도 줄어들게 만든다는 거다. 무거운 세금이 ‘내 돈 내 맘대로 쓸’ 부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선의 해법은 부자들이 팔 비틀리기 전에 알아서 돈을 내놓는 것일 터다. 세금이 아닌 기부로 사회적 갈등을 풀어가야 한단 얘기다. 다행히 미국엔 그런 부자가 많다. 두 달 전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시작한 ‘재산의 50% 이상 기부하기’ 캠페인에 최근까지 38명의 억만장자가 동참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들의 약정 금액만 최소한 1500억 달러(약 175조원)에 달한다.

일찌감치 재산의 99%를 선뜻 내놓기로 한 버핏의 변이 정곡을 찌른다. “1%보다 많이 쓴다고 나와 가족들이 더 행복해지진 않는다. 그러나 나머지 99%가 다른 사람들의 복지엔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는 ‘미국 시민인 점+운 좋게 받은 유전자+다양한 관심’ 덕분에 부를 얻게 됐다고 했다. 저 혼자 잘나서 번 돈이 아니니 사회에 돌려주는 게 지당하다는 소리다.

이렇듯 ‘소득 불평등이 최악인 나라’ 미국은 ‘아낌없이 베푸는 부자들의 나라’인 덕에 큰 탈 없이 굴러가고 있다. OECD 국가에서 둘째로 소득 불평등이 심한 우리나라는 어찌해야 할까.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