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안풀리면 Song을 부른다 네덜란드 송종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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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로테르담의 한 호텔에서 TV를 켰다. 마침 프로축구 페예노르트와 우크라이나의 디나모 키예프간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네덜란드어는 무슨 말인지 몰라도 선수들 이름만은 선명히 귀에 들어왔다.

"송, 호이동크, 송, 오노, 송, 보스펠트…."

페예노르트 팀의 패스가 이어질 때 '송'이란 이름은 거의 한명씩 건너 나왔다. 송종국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페예노르트의 공격은 거의 그의 발에서 시작됐다. 송종국은 이날 경기에서 공에 대한 놀라운 장악력을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 메이커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송종국을 만난 것은 1주일 후인 8일 페예노르트 데 퀴프 스타디움 보조경기장에서였다. 송종국은 오전 10시30분부터 약 한시간 동안 팀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했다.

이미 한시간 전부터 연습장 주변에 진을 쳤던 팬들이 송종국이 모습을 나타내자 모여들었다. 그 숫자는 벌써 네덜란드의 호이동크, 일본의 오노 신지, 호주의 브렛 에머튼 등 대표적 스타들 못지 않았다.

한국인도 있었다. 서울 연희동에서 산다는 회사원 이경숙(23)씨는 1분도 안되는 짧은 만남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왔다. 1백60만원짜리 티켓이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본 송종국의 모습은 그리 밝아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지난달 15일 네덜란드 데뷔전을 가졌던 송종국은 이후 6일까지 불과 21일간 일곱경기를 뛰었다. 주말에는 정규리그 경기를 하고 주중에는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렀다. 월드컵을 능가하는 살인적 일정이었다.

"처음 세 경기까지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갈수록 몸이 무거워졌어요."

지난달 29일 로센달과의 경기 중 허벅지 부상으로 후반에 교체되기도 했던 송종국은 다행히 이 경기 이후 2주 동안 유럽선수권 예선 때문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유럽 무대에서 자기관리는 생존을 위한 기본이다. 송종국은 매니저 역할을 하는 형 종환(27)씨 내외와 함께 데 퀴프 구장 인근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자신의 가정은 아니지만 생활은 그런대로 안정이 된 듯했다.

다만 언어문제는 적지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구단에서도 이 문제를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데뷔 경기 전 감독이 내린 숙제도 링스(왼쪽)·렉스(오른쪽) 등 경기 중 사용할 단어들의 암기였다.

원래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공격으로 역할을 바꾼 것도 수비에서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치명적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팀은 그를 위해 전담 통역을 고용했다. 송종국 역시 가정교사를 두고 일주일에 두번씩 네덜란드어를 배운다. 매일 단어도 50개씩 외운다.

'히딩크 황태자'라는 별명이 따라붙는 송종국이지만 정작 네덜란드에 와서 거스 히딩크 감독과 인사는커녕 전화도 해보지 못했다. 네덜란드에서 그들의 생활은 그만큼 빡빡하다. 그가 히딩크의 소식을 접하는 것은 매스컴을 통해서다. 당분간 자신의 소식을 알리는 것도 매스컴을 통하는 수밖에 없다.

"최소한 비슷한 수준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려면 더욱 뛰어야 한다"는 게 송종국의 말이다.

로테르담=왕희수 기자

go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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