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되는공공개발기술>연구만 열심 사업화는 '나 몰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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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7면

공공기술이 낮잠을 자고 있다.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개발한 기술들이 사업화에 이용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는 것. 정부가 미래 유망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로 시행하고 있는 '특정연구개발사업'(특연사업)의 사업화율도 5%를 밑돈다. 연구만 하고 팽개쳐지는 공공기술의 현실과, 이를 경제의 밑거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알아봤다.

편집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주축이 된 '수도권 공공기술이전 컨소시엄'은 최근 중소기업에 이동통신 기술 하나를 팔았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 연구기관이 1996년 개발한 뒤 묵혀뒀던 것이다. 당시 10억원을 들여 개발한 첨단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평범한 것이 돼 1천만원밖에 못 받았다. 사업화에 대한 무관심으로 애써 개발한 기술의 가치가 뚝 떨어진 사례다.

통계로 봐도 국내 기술의 사업화율은 기대치를 밑돈다. 과학기술부에 따르면 82년부터 2000년까지 이뤄진 특연사업 1만8천9백여 과제 중 사업화된 것은 4.8%인 8백99개에 불과하다. 이 기간 중 얻은 기술료 수입은 약 5백68억원. 투입한 연구개발비 5조6천억원의 1%다. 특연사업에 창의적 연구진흥사업 등 순수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들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초라한 성적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임채윤 연구위원은 "연구기관들은 기초·기반 기술을 내놓고는 뒷짐지고 있고, 기업은 완전히 상품화할 수 있도록 기술을 만들어 떠먹여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대학·연구소의 연구결과가 상품화까지 이어지려면 기술의 변환, 다른 기술과의 융합 등 2차 개발과정이 필요한데 아무도 이를 하려 하지 않아 연구결과가 사장되고 만다는 설명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들도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사업화하거나 기술이전하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고 있다. 특허·기술이전 전담 부서가 있는 곳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몇몇이고, 대부분 연구비를 관리하는 부서에 1명 정도 담당이 있을 뿐이다.

반면 미국의 생명과학 연구기관인 소크 연구소는 특허·기술이전 담당 부서를 따로 두고 최고 책임자는 부소장 대우를 하고 있으며, 전담 직원만 10명이다. 이들의 활약 덕에 연구 과제를 정할 때 사업화 가능성은 전혀 따지지 않고 과학적 가치만 고려하는데도 2백50여건의 기술이전 계약을 해 매년 수십억원의 기술료를 벌어들이고 있다.

미국은 또 3백여 대학과 연구소들이 '기술관리자연합(AUTM)'을 결성해 특허와 기술사업화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연구 결과를 상업화하려면 다른 기술과의 융합 등이 필요해 전문가들이 인간·정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AUTM은 매년 약 5천여건의 특허를 출원하고, 4천건의 기술이전 계약을 한다.

AUTM 멤버인 소크 연구소의 폴리 머피 특허·기술이전 담당 부소장은 "미국 내 대학·연구소의 기술 이전으로 한해 4백억달러의 경제가 창출되고,27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국내에는 대학의 기술이전 연합은커녕 대학별로도 특허나 기술이전을 전담하는 조직조차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임채윤 위원은 "이스라엘은 기술을 가장 잘 아는 대학이 적극적으로 사업화에 나서도록 직접 기술 사업화 펀드를 운영하게 한다"면서 "이같은 투자로 얻은 수익을 다시 연구개발에 쓰는 순환방식을 우리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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