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큰손 잡자 은행들, PB사업<개인자산관리> 대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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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돈 되는 고액 예금 고객을 잡아라."

은행들이 수억원 이상 예금을 하는 '큰 손'들에게 일반 손님과는 차별화한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해주는 '프라이빗뱅킹(PB) 사업'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은행 관계자들은 "은행 수익에 보탬이 되는 고객은 20%에 불과하다는 '20대 80의 법칙'에 따른 조치"라며 "저금리로 은행이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이자간의 차액)만으론 먹고 살기 힘들어진 만큼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16일 한국은행은 국내 주요 은행의 경우 PB대상 고객들의 예금이 전체 가계예금의 20∼50%를 차지하며, 이자부문 수익 중 20∼40%를 올려준다고 발표했다. 은행권의 1억원 이상 고액 예금은 1999년 말 1백5조원에서 올 6월 말엔 1백63조원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PB사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는 데다 금융사고의 위험이 높아지는 등 문제점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치열한 경쟁=지금껏 PB영업은 은행지점에 VIP 전담직원을 배치하는 수준에 그쳤으나 최근 신한·조흥·한미은행 등이 잇따라 별도의 PB센터를 세우며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국민은행도 다음달 중 서울 강남지역에 2개의 PB센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 센터는 은행 직원 외에 부동산·증권·법률·세무 전문가들을 배치해 명실상부한 종합자산관리 체제를 갖췄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건강검진 우대, 유학알선, 리무진 대여 등 부가서비스도 만만치않다.

이이 따라 PB전문가들의 몸값이 상한가를 치고 있기도 하다. 미처 PB인력을 키우지 못했던 조흥은행의 경우 PB센터장을 비롯, 4명을 씨티은행에서 영입하는 등 인력의 80%를 외부에서 충원했다. 국민은행도 센터장 등 7명을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긴급 수혈했다.

국민은행 측은 "서민 은행으로 알려진 기존의 국민은행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PB센터는 아예 새 브랜드를 사용할 계획"이라며 "PB에 뛰어난 스위스은행과의 업무제휴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없나=임대료·전산개발비·전문가 스카우트비 등으로 은행에 따라 수십억∼1백억원 이상의 비용을 PB센터에 쏟아붓고 있으나 별다른 수익모델이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C은행 관계자는 "수익증권을 판매하는데 따른 수수료를 일부 챙기긴 하지만 서구 은행들과 달리 막대한 비용을 들인 자산관리 서비스 자체에 대해선 수수료를 받지 못한다"며 "앞으로 한동안 이익이 나긴 힘들다"고 털어놨다.

20명 이하의 PB직원들이 수천억원에서 1조원에 달하는 고액예금을 관리하다보니 횡령·약정위반 등 금융사고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문제다. 김중연 한은 은행연구팀 차장은 "감독당국이 은행 경영평가 때 PB부문의 수익성을 점검하고 은행의 내부 통제 기준을 강화하는 등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신예리 기자

shi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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