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추리소설 '혈가사'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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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로 추정되는 혈가사(血袈裟)가 발견되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현재 한국 추리문학사에선 1934년 출간된 채만식의 '염마'를 최초의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최근 최독견의 '사형수'(1931년)가 최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발견된 혈가사는 1926년 울산 인쇄소에서 출간된 것으로 '사형수'보다 5년이나 앞선 작품이다. 조선총독부 관인도 선명한 이 소설은 출간 즉시 일본 경찰에 압수되어 조선총독부에 보관됐기에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에 발견된 작품은 광복 후 국립 중앙도서관이 소장했던 것이다.

작자 박병호는 한학을 배운 선비로 울산 최초의 대서사이기도 했으며 항일단체인 신간회 울산지부를 결성하기도 한 지역 선각자라는 점 외엔 행적이나 다른 작품 여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작품명은 피에 젖은 가사가 중요단서가 되기에 붙여진 것이며 미모의 여성이 주인공으로 이수일과 심순애류의 로맨스와 연쇄 살인이 이야기의 큰 기둥이다.

신문학 초창기 작품들처럼 조선시대 언문소설, 변사의 입담,연극조의 문장이 상당히 눈에 띄지만 반전과 증거, 악인과 선인의 대결과 권선징악적 요소가 가미되어 현대 시점으로 봐도 상당히 우수한 추리소설 얼개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그가 이 작품을 쓴 것은 당시 지식인들이 주류를 이뤘던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해석되는데 출간즉시 압류된 까닭은 반일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진 않지만 소설 속 악인들이 대부분 당시 친일파가 주류를 이룬 귀족작위를 가진 사람들이란 점이 고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추리문학의 기원을 다시 앞당길 이 작품은 상하 두권 분량으로 『계간 미스터리』(발행인 이상우) 가을호부터 나눠 실릴 예정이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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