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바미안석불 파괴, 그후 1년세계最高 53m 불상 형체없이 돌무더기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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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9·11 테러로 촉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지난 7일로 1주년을 맞았다. 총성이 멈추면서 깨지기 쉬운 평화는 찾아왔지만 도처에 남은 건 황무지와 폐허뿐. 한때 불교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었던 아프가니스탄의 심장부 도시 바미안의 석불도 종교라는 탈을 덮어쓴 야만(野蠻)과 전쟁의 광기(狂氣) 속에 철저히 파괴됐다. 인류가 낳은 세계적 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의 파괴 현장을 취재했다.

편집자

얼룩 무늬 국방색 군복을 걸친 아프가니스탄 군인 압둘 카름(20)의 임무는 해발 2천5백90m의 산중 도시 바미안에 있는 '구덩이'를 경비하는 일이다.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탈레반을 몰아낸 북부동맹의 한 분파인 '헤즈비 이 와다트(통일당)'수비대가 그에게 총을 주고 "'구덩이'를 지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카름과 수비대가 '구덩이'라고 부르는 곳엔 지난해 3월 이전만 해도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있었다. 간다라 불교 미술이 낳은 불후의 걸작으로 세계 최고 높이(53m)를 자랑하던 바미안 석불 '살살'이 1천5백여년 이상 이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그는 "이런 구덩이 앞에 쌓인 돌무더기를 누가 가져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게 내 임무"라며 따분한 듯 말했다. 실제로 카름이 밟고 있는 돌무더기는 채석장에서 캐다 남은 돌조각들처럼 보였지만 바미안 석불 몸통에서 나온 어엿한 '문화재 조각'이다.

지난해 3월 탈레반은 석불을 '반(反)이슬람적 우상'으로 규정하고 전세계의 만류를 무시하고 파괴를 강행했다.

손과 발 등 형체가 남아 있는 조각들은 탈레반에 의해 파키스탄·일본 등으로 팔려나갔고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돌무더기만 현장에 어지럽게 널려 있다. 기자도 '불경'스럽게 돌무더기를 밟고 다녔지만 "들고 가지 말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석불이 모셔져 있던 감실(龕室)쪽으로 가봤다. 사암(砂岩)절벽 위에 도드라지게 새겨진 부조(浮彫)형식의 조각물인 석불은 온데 간데 없고, 밋밋한 벽만 보였다. 석불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살살'이 있던 곳에서 동쪽으로 1㎞ 가량 이어져 있는 절벽에 위치한 높이 37m의 석불 '샤마마'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폭발물로 파괴했다지만 건물 10여층 높이의 이런 석불들이 어떻게 형체도 없이 짓뭉개질 수 있단 말인가. 의문은 바미안 주민들의 말을 듣고 쉽게 풀렸다.

바미안에서 고미술상을 경영하는 어래프 나비조다(42)는 석불이 파괴될 당시 현장에 있었다. "탈레반 군인들이 도시 입구를 완전히 차단해 외부와 격리한 다음 파괴를 시작했어요. 병사들은 로프를 타고 절벽을 내려와 석불의 전신에 약 3백개의 구멍을 먼저 팠습니다. 그리곤 그 안에 다이나마이트를 넣었죠."

나비조다는 "폭발음이 12∼13일동안 계속됐다"면서 "천지가 진동하는 듯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폭발음이 그치자 외부에서 트럭들이 왔고, 형체가 남은 잔해들을 싣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문명 파괴'는 '살살'과 '샤마마'에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 7월 일본의 불교 사진작가 나카 아쓰시(中淳志)는 바미안 석불이 위치한 절벽에 있는 1백여개 석굴을 둘러보고 "석굴 벽화 중 20∼30%는 남아 있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석달 뒤 현장을 찾은 기자는 남아 있다는 석굴 벽화마저도 크게 훼손돼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석굴 벽에 그려져 있었다는 프레스코 벽화는 뾰족한 뭔가로 온통 긁힌 자국 투성이여서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여러 석굴 입구 주변에는 총알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바미안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모조 석불 등을 팔고 있던 오롬 아 보스(31)에게 총탄 구멍을 가리키며 "탈레반이 한 짓이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석불에 대고 포격 훈련을 했던 자들"이라며 주먹을 흔들었다.

카불의 건축가 압둘 지푸르 모셰니(60)는 석불이 파괴된 현장을 둘러 보고 "뉴욕의 세계 무역센터를 비행기로 짓뭉개 놓은 광기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이 땅에 '신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탈레반의 망상이 인류에게 너무 큰 값을 치르게 했다"고 한탄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 이후 그리스와 인도 문명이 만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류는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지만 인류는 또 다른 문명과 종교의 이름으로 그것을 파괴했다. 이번엔 아프가니스탄이었지만 다음은 미국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원류인 이라크 차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미안에 복구의 희망이 조금씩 일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유네스코)는 지난해 말부터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와 함께 바미안 석불 실태 조사를 시작으로 석불 복원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바미안 석불 유적지에 있던 바미안 호텔도 내년 께 다시 문을 열고 손님을 받을 예정이라고 주민들은 전했다. 석불 복원은 전적으로 외국인들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바미안 주정부 관계자는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너진 석불을 우리가 어떻게 고치느냐"고 말했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석불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재원 조달 계획은 전혀 세우지 못한 상태다.

바미안 석불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마흐다드 아지즈(32)는 "석불이 복원된다면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올 테니 살림살이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탈레반이 도망간 뒤엔 이곳이 여행을 해도 괜찮을 만큼 안전해졌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달라"고 그는 기자에게 당부했다.

kang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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