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 재편되는 출판산업:출판도 서점도 '메이저 3 ~ 4社'각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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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출판업은 한물 간 산업이 아니다. 영화·게임 등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보고며 인터넷 서점처럼 최첨단 닷컴기업의 경쟁이 치열한 곳이 출판시장이다. 출판의 주축인 출판사의 외국자본 도입 추세와 아울러 온·오프라인 서점의 시장 각축전을 살펴봤다.

편집자

2조4천2백억원(지난해 기준)의 출판 시장이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다. 시장의 중추 역할을 하는 출판사와 서점의 강자·약자 차이가 최근 1∼2년 새 더욱 벌어지는 추세다.

독일 미디어 그룹 베텔스만은 북클럽을 거점으로 국내 진출에 성공했으며, 랜덤 하우스 등 자사 출판사를 한국에 직접 들여오는 것도 검토 중이다. 국내 유수 출판사 몇 곳에는 외국 자본의 수백억원 규모 인수·합병(M&A)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지난해 말 출협에 등록된 출판사 수는 1만7천2백39개. 수치대로라면 한국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출판 대국이다.

그러나 이중 책을 한권이라도 발행한 출판사는 1992년 2천5백85개에서 지난해 1천5백49개사로 오히려 줄었다. 단행본 출판사의 경우 민음사·김영사 등 3∼4곳을 빼고는 1백억원대를 넘는 출판사가 없다.

출판 활동을 하는 출판사는 줄고 있으며, 이중에도 매출액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거금이 드는 대형 기획, 베스트셀러로서의 잠재력이 있는 작품들은 이들 대형 출판사에 쏠릴 수밖에 없다.

서점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서점의 공세가 거셌던 2000년, 1천1백36개였던 오프라인 서점은 지난해 8백13개로 줄었다. 종로의 대명사였던 종로서적마저 지난해 6월 부도가 났다. 그러나 교보문고·영풍문고·북스리브로(옛 을지서적)의 삼파전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교보문고는 대구·부산 지점을 여는 등 전국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 중이어서 주목된다.

인터넷 서점의 강자 구도도 굳어져 가고 있다. 지난 5월 인터넷 서점 1위인 예스24가 와우북을 합병해 이 분야 시장 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다. 뒤이어 알라딘·모닝365·교보문고 인터넷 등이 2∼4위 각축을 벌이고 있다.

출판사와 온·오프 서점의 강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경쟁이 뜨거운 가운데 외국 자본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99년 한국에 진출한 베텔스만은 3년 만에 45만여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책 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전년 대비 2백20%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고, 올해도 1백% 이상의 성장률을 기대하고 있다. 잡지·단행본 출판사인 디자인하우스는 2년 전 유럽의 다국적 미디어 기업 BRIH로부터 1천만달러 외자를 유치하고 지분 49.9%를 양도했다.

이런 외국 자본의 진출은 한국 출판업계에는 위협적이긴 하지만 '출판은 영세하다'는 고정 관념을 해소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은 "출판은 부가가치가 큰 콘텐츠 사업의 핵심이며, 특히 책을 숭상하는 유교 전통이 남아 있는 한국 사회는 현대적 유통망이 갖춰지기만 하면 책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발아 단계이기는 하지만 올해 전자책 시장 규모도 2백억원으로 예상되며, 영화·게임 등 파생상품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출판 산업이 21세기 핵심 산업으로 크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아직까지 출판사·도매상·오프라인 서점 간의 거래는 어음 결제가 대부분이다. 각 서점의 출고·결제 시스템도 모두 달라 어느 출판사의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알 길이 없다.

독자 수요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출판 기획, 번역본 위주의 출판 탈피, 출혈적 가격 경쟁 외의 마케팅 강화도 출판산업을 키우는 방안이다.

세부적으로는 현금 결제를 늘리고 전체 유통망을 아우르는 통합 시스템을 갖추고 국내 저자·기획물을 발굴해 수출 경쟁력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등 업계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사·인쇄소·물류단지 등 4백여 업체를 한곳에 모아놓을 파주출판단지는 유통 현대화, 출판산업의 집적화의 새로운 실험 무대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길사·열화당 등 대표적 출판사들과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보진재 등 인쇄 업체, 책을 포장·배송하는 시스템을 갖춘 물류단지가 모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면 기획부터 배달까지 최소의 비용으로 양질의 도서를 공급할 발판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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