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장애인 배려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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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오바마 미 대통령은 장애인법 20주년 기념 연설에서 장애인이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한 이 법에 대해 큰 자긍심을 나타냈다. 미국 하원은 이날 공화·민주 양당 의원들의 발의로 TV 방송과 휴대전화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21세기 방송통신접근법을 추가로 통과시켰다.

애플의 아이폰 때문에 휴대전화 시장이 한동안 난리였다. 아이폰의 첨단 기능과 멋진 디자인, 획기적인 앱스토어는 사용자들을 감동시켰다. 하지만 아이폰의 놀라운 기능은 다른 데 있다. 아이폰의 설정 기능에는 ‘손쉬운 사용’이라는 메뉴가 있어서 장애인과 고령자 같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자신에 맞게 화면을 조정하거나 글자를 읽어주는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도 메시지나 e-메일을 확인할 수 있고 웹 페이지의 내용을 음성으로 들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아이폰의 대항마로 갤럭시S를 출시해 큰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갤럭시S에는 이런 감동을 주는 기능이 없다. 갤럭시S가 운영체제(OS)로 사용하는 ‘안드로이드 OS’에 장애인들을 위한 메뉴가 제공되고 있지만, 아이폰과 달리 앱을 일일이 앱스토어에서 내려받아야 한다. 결정적으로 한글 음성을 읽어주는 TTS 엔진이 내장돼 있지 않아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이 e-메일이나 메시지, 웹 페이지 내용 등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플의 아이폰은 미국 제품인 데도 한글 음성엔진이 내장돼 있어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데, 갤럭시S는 한국 제품인 데도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의 장애인들이 한국 제품인 갤럭시S를 이용하는 데에는 불편이 없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장애인법에 따라 미국의 장애인들이 사용하기 힘든 제품은 미국에 수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갤럭시S가 안드로이드 OS에 영어 음성엔진을 기본으로 내장하고 있는 점도 작용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고용의 증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사의 제품 또는 서비스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동일한 편의로 제공하는 것 또한 사회적 책임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통신회사 NTT도코모는 도쿄 한복판에 있는 서비스센터에 고령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상담소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 고객들을 위한 회사 차원의 배려다. 서비스센터에서는 고령(高齡)의 고객들에게 큰 글자와 그림 위주로 만들어진 사용설명서를 나눠 준다. 전담 직원이 요금고지서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거나 확대해 제공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해선 특별 제작한 점자(點字) 사용설명서를 나눠준다. 우리나라의 SKT나 KT에서 운영하고 있는 고객 플라자에서 노인이나 장애를 가진 고객에게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사례를 찾아보지 못했다.

정부가 집권 후반기 역점사업으로 친(親)서민 정책을 들고 나왔다. 서민 중에서도 가장 배려해야 할 대상이 바로 힘없는 사회적 약자, 즉 고령자와 장애인이 아니겠는가. 애플의 컴퓨터와 아이폰,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스 운영체제, 도요타의 자동차 등 세계 1위 제품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장애인을 위한 기능이다. 장애인들은 이런 제품을 이용하면서 사회적 평등과 함께 편의를 누릴 수 있으니 이런 제품들이야말로 진정한 명품(名品)이라 부를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강자로 크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절감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초보 단계 수준에 머무르는 느낌이다. 언제쯤이면 우리나라 제품 가운데 장애인과 고령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명품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시장성과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기능을 만드는 것에 소극적인 것은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 “기업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마음에 와 닿는 이유다.

이성일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BK21 고령화 및 장애 대응 삶의 질 향상 기술 인력양성 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