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재미있게 끝내는 방학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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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관찰’ ‘생태체험’ ‘환경탐구’ ‘가족여행 기행문’ ….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의 방학숙제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숙제가 많아 엄마들에게도 은근히 부담이 된다. 방학숙제 우수상 단골 엄마들을 만나 아이에게 교육적인 효과도 거두면서 엄마 부담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집 근처 산에서 식물 관찰해 관찰기록지 만들어

오화순(41·경기 성남시 야탑동)씨는 지난달 28일 아들 이홍민(야탑초 4)군과 함께 집 근처 맹산을 찾았다. 자유주제로 주어진 이군의 방학숙제를 평소에도 재미있어 하던 자연관찰 기록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오씨는 이날을 위해 날짜·장소·관찰대상·느낌 등을 적을 수 있는 간단한 관찰기록지를 만들었다. 이군은 가장 먼저 ‘루페(확대경)’를 챙겼다. 동·식물도감만 곁들이면 준비 끝이다.

이군은 자신의 자연관찰 학습장인 맹산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보이는 꽃에 다가가 루페를 들이댔다. 이날의 첫 번째 관찰 과제다. 오씨는 손에 들고 있던 식물도감을 펼쳐 이 꽃에 대한 정보를 이군과 함께 찾기 시작했다. ‘개망초’라는 꽃이름을 알게 된 모자는 꽃에 얽힌 사연을 읽었다. “원래 이 꽃은 망초라는 이름이었는데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그 해 유난히 이 꽃이 많이 피었대. 그래서 그 때부터 이름이 개망초가 된 거야.”

오씨의 설명을 들으며 루페로 한참 꽃을 들여다보던 이군이 기록지에 꽃을 그렸다. 거기에 자신이 본 꽃의 특징을 표시하고, 엄마가 설명해 준 꽃 이름에 얽힌 사연도 빼놓지 않고 받아 적었다.

현장 관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이군은 식물 채집본을 살펴봤다. 이군은 1주일 전에 집 근처에서 5가지 식물을 채집해 놓았다. 아파트 화단에 나 있는 이름 모를 식물 관찰도 이군의 방학숙제 중 하나다. 채집할 식물을 고르고 나면 먼저 모종삽으로 그 식물의 주위를 넓게 파낸다. 뿌리까지 모두 채집하기 위해서다. 이를 채집통에 넣어 집에 가지고 와 흙을 털어내고 신문지 위에 고르게 편다. 신문지를 덮고 그 위에 무거운 책들을 올려 놓은 후 그늘에서 1주일 정도 말린다.

이군은 모양 좋게 말라있는 식물을 조심스레 떼어 풀을 사용해 스케치북에 하나씩 붙였다. 그 스케치북에는 이미 각 식물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미리 도감에서 식물 이름과 특징에 대해 알아보고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가족여행도 좋은 방학숙제 거리. 지난해에 오씨 가족은 경주 일대를 여행했다. 불국사와 석굴암, 해인사를 돌며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지명이나 역사물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기록했다. 디지털 카메라를 활용해 역사물들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거나 아예 관찰 기록을 위한 사진을 찍어 스크랩하면 훌륭한 과제물이 탄생한다. 가족 여행 기록엔 특별한 양식이 없다. 시간의 순서대로 사진을 찍고 거기서 느낀 바를 그때그때 기록하거나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보강하면 된다. 오씨는 “사진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큰 스케치북을 활용해 스크랩하면 보기 좋다”며 “아이들이 나중에 스크랩북을 뒤적이면서 그 때를 추억하는 앨범 역할도 할 수 있어 더욱 좋다”고 추천했다.

아이들이 혼자 할 수 있도록 환경 조성해야

같은 날 오후 허윤미(37·경기 오산시 원동)씨 집에서는 김나리(오산 대원초 4)·윤지(오산 대원초 2)·한준(6) 세남매가 야단법석이다. 투명 플라스틱 콩나물 용기에 담겨있던 콩에서 드디어 싹이 돋아나서다. 담아 놓은 지 이틀 만에 작은 싹이 돋아난 콩나물은 5일 정도만 지나면 반찬으로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란다. 허씨는 지난 6월 아이들과 함께 이미집에서 콩나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다. 당시에도 관찰기록을 해 놓긴 했지만 방학숙제로 한 번 더 해보자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콩나물 기르기에 나섰다. “집에서 식물의 생장을 직접 눈으로 관찰하는 데 콩나물보다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방법도 쉽죠. 물만 주면 되니까요.”

허씨도 이번 관찰을 위해 관찰기록지를 새로 만들었다. 사진을 붙이고 여기에 아이들이 본 느낌 그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공간을 배치했다. 콩에 얽힌 속담과 과학 상식도 함께 넣어 자연스레 학습효과도 얻을 수 있게 했다. 허씨는 “이렇게 배운 기억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며 “단순히 체험 캠프에 보내는 것 보다 훨씬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순영(41·경기 안산)씨는 아들 유진학(안산 삼일초 6)군의 방학숙제 때문에 고민이었다. 지난 방학 때는 자유주제로 집에서 달팽이를 기른 후 그 관찰기록을 제출해 수상까지 했다. 하지만 올해는 숙제 제목부터 지난해와 다르다. ‘스스로 문제 해결하기’라는 주제로 프리젠테이션 파일(PPT) 또는 동영상을 찍어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는 과제다.

고민 끝에 방학 중 참가하는 체험캠프가 끝나고 유군 혼자 집까지 돌아오는 과정을 PPT로 정리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서울 종로에서 캠프가 끝난 후 전철을 타고 집까지 오는 과정을 미리 그려봤다. 또 전철 노선 중 역사 또는 사회적인 이슈를 지닌 역을 표시해 설명을 곁들였다. 사회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유군의 아이디어다. 둘째인 태학(안산 삼일초 3)이를 위해선 집에서 금붕어를 키우면서 관찰기록을 파일로 만들기로 했다. 방학 중에 모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생장속도가 빠른 금붕어를 구입해 따로 어항을 만들어 키울 예정이다.

창도초 김영순 교사는 “아이들이 혼자 할 수 있도록 엄마는 그 환경만 만들어 주면 된다”며 “아이와 많은 시간을 고민해 창의성을 발휘한 숙제가 돋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오화순씨와 이홍민군이 자연관찰 학습 중 개망초를 살펴보고 있다. 이처럼 집 근처 생태를 활용한 자연관찰 기록은 비교적 손쉬운 방학숙제 거리다.

<김지혁 기자 mytfact@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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