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선문답'의 향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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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자기완성을 고민하는 사람은 이 가을에 부산 해운대가 내려다보이는 당산 자락에 자리잡은 해운정사를 찾을 일이다. 불자가 아니어도 좋다. 거기는 혼자 가면 더 좋겠다.

오는 20일 해운정사에서 오전 9시30분부터 열리는 국제 무차(無遮:차별없음)선대법회는 불가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는 스님은 물론이고 일반인 모두에게 열려 있다. '21세기 선(禪)으로써 인간성 회복'이라는 주제로 서옹(백양사 방장)스님과 진제(해운정사 조실)스님이 '참 나'의 세계를 보여주면 누구나 질문과 대답을 통해 나름대로 자신이 깨달은 세계를 드러낼 수 있다. 그 과정에 어떤 선지식으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스스로 공부의 얕음을 부끄러워하며 새롭게 각오를 다지게 된다.

일반인들에겐 모처럼 선문답의 오묘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번에는 1∼2차 무차선회와 달리 중국의 정혜(淨慧·조주원 백림선사 방장)스님과 일본의 종현(宗玄·임제종 묘심사파 대표)스님까지 '법(法)겨루기'에 참여해 열기를 더할 전망이다.

이번 무차선회는 1998년 백양사에서 86년 만에 끊어진 맥을 다시 이은 뒤 2000년에 이어 세번째다. 무차선회를 통해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서옹 스님의 의지에 따라 열린 1회에서는 어느 여자 불자가 스님의 뺨을 때리는 등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고 지나치게 학자 중심이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번엔 큰 스님들이 각각 30여분에 걸쳐 법문을 끝내면 대중이 그 내용을 바탕으로 근원적인 진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큰스님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선문답이 진지해지면 시간은 무한정이다.

무차선회는 학승들이 진리를 깨달은 모습을 스승에게 검증받고, 그렇게 확인받는 과정에 깨달음에 대한 갈망을 더 뜨겁게 품는 자리다. 그래서 교육의 방편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은 스님들의 치열한 구도정신을 보면서 중생의 삶을 살면서도 자아완성을 이루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선이란 참나를 찾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참나란 인간의 본성이나 자기 완성이 아닐까. 이것을 사람들은 불성(佛性)이나 '영원한 자유'로 표현하기도 한다.

인류의 역사는 종교와 민족간의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되어온 게 사실이다. 그 원인을 불교에서는 자기 완성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부족한 데서 찾는다. 그래서 불교계는 무차선회를 통해 선(禪)이 인간성 회복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자 한다.

조직위원장인 혜국(남국선원 선원장)스님은 "내가 나를 모른 채 앞으로 내달은 결과 나타난 것이 현대사회의 병폐들"이라며 "나를 찾아 거꾸로 내면을 보는 것이 선이니 21세기 인류문명을 이끌 사유체계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정사 웹사이트 주소는 WWW.seon.or.kr.

◇무차선회란=남녀노소나 빈부를 가리지 않고 부처님의 궁극적인 진리를 놓고 한마디씩 던질 수 있는 법회다. 인도에서는 BC 3세기 아소카왕 시절에 널리 행해졌다. 계급이 엄격하던 당시에 국왕은 자신의 참스승을 모셔놓고 대중에게 부처님의 설법을 전하는 자리를 종종 마련했다. 중국에서는 7세기 삼장법사인 현장에 의해 처음 도입됐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자주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1912년 오대산 상원사의 방한암 선사가 금강산 건봉사에서 연 것이 근대의 마지막무차선회였다.

정명진 기자

m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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