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봉희(50·여)씨는 지난달 30일 동네 수퍼마켓에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상가 지하에 있는 수퍼에서 원래 1000원에 팔던 아이스크림 가격이 1300원으로 올라 있었다. 며칠 새 값이 오른 것이라 생각한 김씨는 1층에 있는 다른 수퍼로 갔다. 거기서는 똑같은 아이스크림이 750원이었다. 김씨는 “같은 건물 아래층 위층에서 아이스크림 값이 두 배 가까이 차이 나는 걸 보니 어리둥절했다”고 말했다.
라면·과자·아이스크림·빙과류 등 가공식품 4종과 의류 243종에 오픈프라이스 제도(개방형 가격제)를 적용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본지가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사이트 ‘티프라이스(price.tgate.or.kr)’에 공시된 4가지 상품(삼양라면·새우깡·메로나·월드콘)을 골라 6월 30일과 7월 30일의 판매가격을 분석한 결과, 한 달 사이 라면·과자 가격은 오르고 아이스크림 가격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형마트의 라면과 과자 값이 많이 올랐다. 삼양라면은 농협유통 창동점에서 개당 470원→556원으로 올랐다. 홈플러스 방학점도 510원→556원으로 올려 판매하고 있다. 새우깡은 변동 폭이 더 컸다. 홈플러스 방학점은 470원에 팔던 새우깡(90g)을 640원으로 36% 인상했다. 이마트 미아점(470원→620원), 롯데마트 중계점(510원→640원), 농협유통 창동점(460원→570원)에서도 값이 올랐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현재 파는 가격이 정상가이고, 한 달 전에는 할인 행사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크림 가격은 대부분 내렸다. 월드콘(160ml) 값은 대형마트인 이마트 미아점(912원→800원), 홈플러스 방학점(1120원→800원), 롯데마트 중계점(1136원→800원)과 기업형수퍼인 홈플러스 공릉점(750원→525원)에서 인하됐다.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 김민 부장은 “아이스크림은 권장 소비자가격이 높게 책정돼 있었는데, 오픈프라이스제가 도입되면서 가격 거품이 빠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이스크림은 그동안 권장소비자 가격을 높게 써놓고, 실제로는 40~50%씩 할인하는 기형적 판매가 널리 퍼져있었다.
전통시장에서는 아직 상품 가격에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4개 상품 가격이 대부분 그대로이고, 일부는 올랐다. 부산 구포시장의 새우깡은 600원→650원, 대전 중리시장 월드콘은 600원→1000원으로 뛰었다. 편의점도 4개 품목의 가격을 조정하지 않았다.
대한상공회의소 정상익 연구위원은 “오픈프라이스 제도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시행하고 있다”며 “도입 초기에 어느 정도 혼란을 일으킬 수 있지만 업체 간 경쟁을 통해 가격이 내려가면서 결국 소비자에게 유리한 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픈프라이스 제도를 시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통시장에 대해 지식경제부는 포스 시스템(바코드 인식기가 부착된 단말기)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수많은 상품의 가격표를 일일이 붙여놓거나 가격을 외우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경부 유통물류과 염동관 과장은 “중소상인들은 가격 정보가 부족해 영업사원들이 얼마 받으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좀 더 나은 조건에서 가격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진경 기자, 하선영 인턴기자
◆오픈프라이스 제도=제조업체가 정하는 권장소비자가격을 폐지하고, 최종 판매업자(주로 유통업체)가 판매가격을 정하는 제도. 실제 판매가격보다 부풀려 권장소비자가격을 정한 뒤 대폭 할인해 파는 식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도입됐다. 1999년 TV·운동화·신사정장 등 12개 품목에 처음 적용했으며, 올 7월 1일 의류 243종과 가공식품 4종 등 247종이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