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인터뷰를검증한다-정몽준]가진 자를 위한 교육정책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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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몽준(鄭夢準)후보는 국내외 명문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정치학박사 학위 소지자다. 거기에 이미 4선의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 경력 역시 풍부하다. 이 정도면 대통령 후보로서 결코 손색이 없는 학력과 정치경력을 갖췄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를 바탕으로 한 한국 정치와 경제에 관한 탁월한 통찰력이 그의 인터뷰 답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이 만연하고 민주주의는 고사상태에 빠져들고 있는데도 그 원인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과 개혁 방안에 대한 진지한 모색의 흔적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4선의 국회의원이라지만 鄭후보의 의정활동 경력에 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소한의 의사활동조차 극히 소홀히 했던 까닭이 무엇인지, 부패하고 오만한 정치권력에 대해 한번이라도 비판의 목소리를 의정 단상에서 내 본 적이 있는지, 명문대 출신 정치학박사로서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한 개혁 입법을 한 차례라도 주도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또 무소속의원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어느 누구도 적으로 삼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적 계산의 결과는 아니었는지. 그렇기 때문에 이제 자신을 후보로 옹립해 주기만 한다면 이회창 후보든, 노무현 후보든, 김종필 전 총재든, 이한동 전 총리든 누구와도 연대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사실 鄭후보의 소신과 정책성향은 학력이나 정치경력보다 재벌 2세라는 경제적 배경에 더 크게 영향받고 있다. 인터뷰에서도 시장경제에 대한 깊은 신뢰, 그리고 가진 자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사고가 그의 답변 곳곳에서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높은 조세부담률과 국민개병제가 아니다. 가중되는 경제난과 실업의 고통을 치유해 줘야 할 국가의 손길 부족이 이들에게는 더 고통스럽다. 鄭후보처럼 치열한 경쟁사회가 싫어서 일찌감치 은퇴해 남은 생을 유유자적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자식들 공부시키고 또 부족하나마 노후를 건사할 만한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하기도 전에 대책 없이 시장으로부터 퇴출 당하는 것이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것이 대한민국 보통 시민들의 삶의 현 주소다. 운 좋게 부모를 잘 만나 엄청난 부를 상속받았지만 그래도 학력을 쌓을 만큼 쌓은 鄭후보라면 자기보다 운이 좋지 않은 시장 열패자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재벌에 대한 규제를 철폐해야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鄭후보의 주장은 이들에게 결코 위안이 될 수 없다. 이런 鄭후보이기에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값이 왜 뛰고 있는지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또 부동산 가격 폭등과 거시경제 운용의 상관관계에 관한 비판적 성찰을 기대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가 인터뷰에서 교육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제시한 교육정책 역시 불행히도 그릇된 시장 중심의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국적 없는 조기 유학생 증가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초중등교육에 대한 일부 돈 있는 계층의 대응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초점을 그처럼 지엽적·파생적 이슈에 맞추고 있다. 그래서 내놓은 대책이 교육시장을 개방해 굳이 해외에 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외국의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이 역시 가진 자들을 위한 교육대통령이 되겠다는 얘기 아닌가.

대통령 후보로서 鄭후보의 자질과 소신이 이처럼 협애한데도 불구하고 현재 鄭후보에 대한 국민적 신망은 비교적 높다. 그러나 그것은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이끈 데 따른 신망일 뿐이다.

이처럼 월드컵을 통해 얻은 신망을 굳이 정치적 목적에 소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월드컵을 통해 결집된 젊은 에너지가 보다 건전하고, 정의롭고, 활기찬 사회적 힘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그에게 집중된 여망을 활용할 수 있는 보다 나은 길은 없을까. 鄭후보가 진정 고민해 봐야 할 것은 이 점일 것이다. 鄭후보가 가장 존경한다는 빌 게이츠는 비록 부를 상속받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축적했지만 그 부를 매개로 권력을 탐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부의 사회적 환원에도 적극적이다. 참된 존경은 겉치레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뛰어난 점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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