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에 걸린 현대상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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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구조조정을 통해 재기의 길을 모색하던 현대상선이 비틀거리고 있다.

갑자기 불거져 나온 '대북 비밀 지원설'로 인해 자동차 운송사업 부문 매각 작업이 예정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자동차선 매각을 위한 금융권의 인수자금 조달 작업이 차질을 빚을 경우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자동차선 사업부문을 유럽계 해운사와 현대·기아차 합작법인에 팔아 13억달러를 받을 예정으로 30일부터 로드쇼를 벌이고 있다.

박재영 전무는 "인력 감축과 컨테이너 시황 호조로 회사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사태가 터져 안타깝다"면서 "해외 영업이 80% 이상인데,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화주들이 이탈할 경우 큰 타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세계 5위의 해운회사로 건실했던 현대상선이 왜 이렇게 곤경에 빠지게 됐나.

◇무리한 대북사업 투자=당초 현대상선은 2003년부터 무차입 경영을 꿈꿨다. 1999년까지 매년 흑자를 내 한때 주가가 2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흑자로 내실을 다지지 못하고 대북사업(금강산 사업)과 그룹 계열사 지원에 쏟아부었다. 주가는 현재 액면가(5천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천9백원대에 머물고 있다.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에 발을 담근 것이 화근이었다. 더구나 관광선 운임조차 손실을 보고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상선은 원래 북한에 지불할 금강산 입산료 등 원가를 따져 1인당 1천5백달러(당시 환율 1천3백80원 기준·3박4일)정도로 책정했다. 따라서 1인당 2백7만원을 받아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어느날 정부 관계자를 만난 뒤 느닷없이 77만원이 적은 1백30만원선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당시 내부에서 무원칙한 요금 결정에 반발했으나 정부가 앞으로 면세점과 카지노 사업권을 내줄 것이라고 귀띔해 무마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상선은 면세점과 카지노 사업 허가를 받지 못했다. 현대상선은 결국 지난해 6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금강산 사업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이 사업으로 2천6백22억원의 손실이 났고 회사는 망가졌다.

◇재벌형 지배구조가 근본 원인=현대상선의 오너인 鄭회장과 그 가신들은 겉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표방하면서도 사사건건 경영에 개입했다. 만 3년 동안 회사를 잘 끌어오던 김충식 전 사장이 오너의 대북사업 및 계열사 지원 강요에 반발해 지난해 10월 사퇴하기도 했다. 현대상선은 최근 일년새 대표이사만 3명이 바뀌었다.

현대상선을 막후조정하는 鄭회장의 경우 등기 이사로서 4.9%의 지분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장모(김문희씨)가 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 지분 15.16% 보유) 등 그룹 계열사 등을 통해 사실상 현대상선을 지배하며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지배구조 때문에 현대상선은 그룹 계열사가 부실할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증권 윤재현 리서치팀장은 "현대그룹의 의사결정 과정이 1인 총수에 집중돼 옳지 않은 결정에 대해 반대하고 조정할 수 있는 사람과 시스템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김시래·김동섭 기자

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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