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지원 강민구 판사 '이색 판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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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수원지법 성남지원 강민구(姜玟求·45·사진)부장판사는 최근 채무관계를 놓고 옥신각신하다 주먹다짐까지 벌인 두 명의 여자 피고인에게 이색 결정을 내렸다.

친구 사이인 이들은 벌금 50만원씩에 약식 기소되자 억울하다며 서로가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姜부장판사는 양측 주장을 들은 뒤 "재판을 받는 대신 조용한 찻집에 가서 대화를 나누며 상대 입장을 충분히 들어볼 것을 명령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정에서 다퉜던 일은 잠시 접어두고 예전에 함께 즐거웠던 일들을 먼저 얘기해 보라"고 덧붙였다.

어리둥절해하던 두 피고인들은 姜부장이 소개한 법원에서 가까운 남한산성 내 찻집을 찾았고, 차를 한잔 하면서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웃음이 돌며 어색하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결국 두 사람은 정식 재판 청구를 철회하고 법정 다툼은 없었던 일로 했다.

며칠 뒤 찻집 주인이 姜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두 여자분이 찾아와서는 '판사님이 이곳에서 차 한잔 하라고 해서 왔는데 한시간 넘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서운했던 마음이 눈녹듯 사라지더라'며 손을 잡고 나갔다"고 전했다.

벌 대신 대화를 권유해 꺼져가던 우정을 살려준 결정이었다.

姜부장은 이전에도 재산문제가 법정까지 불거진 형제들에게 회심곡을 틀어줘 법정을 눈물바다로 만드는 등 인간미 풍기는 재판으로 눈길을 끌어왔다. 그가 법의 잣대가 아닌 따뜻한 마음으로 재판을 할 수 있었던 건 지난 3월부터 선고가 있는 날마다 피고인과 방청객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면서부터였다.

그는 판결 전 "저는 오늘 아침 저로 인해 억울함을 당하는 피고인들이 없도록 현명한 지혜를 달라고 마음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는 내용으로 된 '법관의 고백'을 5분여 동안 읽어내려간다.

그는 "판결 전 읽는 글에 부끄럽지 않도록 사소한 사건에도 최선의 판단을 위해 항상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판사가 건넨 뜻밖의 고백과 충고에 감동을 받은 피고인들이 재판 후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보내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 8월 재판을 받았던 李모씨의 부인은 '姜판사님께서 법정에서 하신 좋은 말씀을 평생 동안 기억하며 살아가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왔다. 또 다른 재판 당사자는 "판사님의 교훈적인 말씀에 이런 분이 계셔서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구나"라고 깨달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진배 기자

allon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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