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바늘로 꿰맨 사랑의 면 생리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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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사랑나눔의사회’ 회원들이 방글라데시 여성들에게 나눠줄 면 생리대를 만들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의 ‘사랑나눔의사회’ 사무국. 넥타이를 맨 남성들이 면생리대를 만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흰 천을 날개형 생리대 모양으로 자른 뒤 방수천을 넣고 손바느질로 꿰맸다. 바느질 땀은 삐뚤빼뚤이지만 바늘 끝을 쳐다보는 눈매만은 날카로웠다.

의사회 임태우(43·치과의사) 회장은 “인턴 때 의사 가운에 단추를 단 이후로 바느질을 해본 적이 없다”며 “이번 기회에 생리대 구조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고 웃었다. 처음엔 여성용품 만드는 것을 쑥스러워하던 다른 남성 회원 10여 명도 바느질이 손에 익자 “내가 직접 쓴다고 생각하고 만들겠다”며 남은 재료를 집에 가져가기도 했다.

이날 40여 명의 남녀 회원이 만든 100여 개의 면생리대는 다음 달 1일 방글라데시로 보내진다. 의료진과 일반회원으로 구성된 ‘사랑나눔의사회’의 해외봉사대를 통해서다. 해외봉사는 2004년 시작한 이후 열 번째다. 의사·약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 25명이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참가할 계획이다. 2008년 방문했던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빈민촌을 다시 찾아 나흘 동안 학교 대강당을 빌려 내과·외과·치과·한의학과 등 무료 진료를 펼친다.

면생리대를 나눠주는 여성보건의료 사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이디어를 낸 이는 약사 이수정(28·여)씨다. 이씨는 2008년 방문 때 변변한 생리대가 없어 비위생적으로 생활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현지 여성들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지 못한다. 공장 노동자의 평균 월급이 우리나라 돈으로 7만5000원인데, 10개짜리 생리대 가격이 1400원이나 된다. 대신 ‘네크라(nekra)’라는 면생리대를 쓴다. 헌 옷을 잘라 만든 것인데 흡수가 잘 안 된다. 이 때문에 질염이나 자궁경부암 같은 생식기 질환이 많다. 이씨는 “저개발 국가의 빈곤 여성은 연평균 50일을 생리로 인해 결근·결석한다”며 “면생리대가 여성들의 건강 관리와 사회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도 화학약품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면생리대를 애용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봉사대는 현지 여성들과 직접 면생리대를 만들어보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봉사대원들의 소원은 이런 빈곤지역에 ‘상설 진료소’를 설치하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봉사대장을 맡은 윤민식(36·치과의사)씨는 “환자들을 보면 썩은 이는 많은데 시간 부족으로 급한 것만 치료하고 돌려보낼 때가 가장 안타깝다”며 “단기봉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의료 지원을 할 방법은 없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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