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 대재앙] "지금은 사업보다 이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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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랑카 동부 트린코말리 지역의 이재민 캠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나문성(29)씨가 의약품 상자를 나르고 있다. 이수기 기자

9일(현지시간) 스리랑카 동부 트린코말리 지역의 마바디체나이 이재민 캠프. 10세 안팎의 스리랑카 어린이들이 한 이방인의 품에 뛰어들었다. 20대 후반의 이 남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리하리(괜찮다)"라며 아이들의 등을 두드렸다. 기자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생업을 제쳐두고 자원봉사에 나선 한국인 나문성(29)씨. 지진해일의 피해를 본 215가구 900여 이재민이 임시 수용된 이곳에서 나씨는 10여일째 복구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20여구의 시신을 직접 묻기도 했다고 한다. "이웃이 험한 일을 당했는데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나의 일은 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2003년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위즈콤이란 회사를 차린 뒤 컴퓨터 판매와 네트워크 설치 사업을 주로 해왔다. 군 제대 뒤 외국계 회사를 다니던 중 스리랑카에서 고무장갑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 나종래(55)씨의 권유로 이곳에 정착했다.

지난해에는 스리랑카 정부와 대학 등에 월 40~50대의 컴퓨터를 납품하고 스리랑카 정부의 통신망 구축 공사를 하는 등 사업이 본궤도에 들어섰다. 아버지도 1993년부터 13년째 스리랑카에 머물면서 매년 수백만켤레의 고무장갑을 생산, 남미와 스페인.대만 등지에 수출하고 있다.

엄청난 자연재해가 이들 부자의 '제2의 고향'을 덮친 날, 아버지는 나씨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이웃을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곧바로 짐을 꾸려 자원봉사에 나섰다. 아버지도 남부 골 등 피해지역에 고무장갑 10만켤레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나씨는 피로가 쌓이는 와중에도 스리랑카 주민들이 한국인에게 고마워하는 것을 느낄 때 힘이 난다고 했다.

그는 "이곳 주민들은 한국이 마음씨 곱고 예의바른 사람들의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이번 참사에서도 수많은 한국인이 와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진 피해 복구가 하루 이틀로 끝나는 일은 아니지만 스리랑카의 부활을 믿는다"며 나씨는 현지의 어린이들을 다시 감싸안았다.

트린코말리(스리랑카)=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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